악성민원 학부모 신상 공개한 영웅?…사적 제재 논란
SNS에 폭로…"선 넘었다지만 개의치 않아"
공적 기능 안 거친 사적제재…부적절 지적
개인정보법 위반·명예훼손 처벌 가능성
"국가가 피해자 보호에 신경을 더 써야해"
[대전=뉴시스] 박진우 인턴기자 = 대전지역 40대 여교사가 아동 학대로 고소를 당한 데 이어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지난 8일 빈소가 차려진 대전 서구 장례식장에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2023.09.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숨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을 받는 학부모의 신상을 폭로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이 등장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적 경로를 거치지 않은 신상 폭로가 사적제재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SNS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학부모의 가족 사진부터 전화번호, 주소, 직업 등이 적힌 게시물 수십 개가 올라왔다. 계정 이용자는 "혹자는 선을 넘는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저 악마들 때문에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고, 노부모는 애지중지 곱게 키운 모범생이자 교사로서 촉망받던 딸을 잃었다"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이런 신상 폭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탐정사무소가 지난해 5월 부산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30)씨의 사진, 이름, 생년월일, 신체 특징은 물론 전과 기록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에는 강력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2018년에는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가 각각 등장했었다.
[서울=뉴시스]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따르면 신상공개가 이뤄진 후 대전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가게에 케첩을 뿌리거나,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사형제도 필요하다' 등의 쪽지가 붙이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 = 카카오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2023.09.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해도,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무분별하게 신상공개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마녀사냥과 2차 피해를 부르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포되는 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어서다.
실제 숨진 대전 초등교사의 가해 학부모로 지목된 인물이 운영하는 가게 입구에 케첩을 뿌리거나,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사형제도 필요하다' 등의 포스트잇 쪽지를 붙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숨진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아동 학대 조사에서 '정서학대' 의견을 낸 사실이 알려지며 '후원을 끊겠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2020년 9월에는 한 이종격투기 선수가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디지털교도소에 의해 신상이 공개돼 운영진을 경찰에 고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선수는 성폭행 사건 관련자로 신상공개가 됐지만, 당사자와 이름만 같았을 뿐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이 임의로 다른 사람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공개된 사진이나 영상 속 인물을 모자이크 처리해도, 당사자의 주변인이 해당 인물을 특정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일종의 정의감에 기초해서 신상공개를 했을 것으로 비춰지지만, 그 행위 자체가 형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공개한 신상이) 사실과 다른 경우에는 가중 처벌될 거고, 사실이더라도 명예훼손이다"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13일 SNS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학부모의 가족 사진부터 전화번호, 주소, 직업 등이 적힌 게시물 수십 개가 올라왔다. 계정 이용자는 "혹자는 선을 넘는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저 악마들 때문에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고, 노부모는 애지중지 곱게 키운 모범생이자 교사로서 촉망받던 딸을 잃었다"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사진 = 뉴시스 DB) 2023.09.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판례도 무분별한 사적 신상공개를 경계하고 있다.
2021년 9월에는 대구고법 제2형사부 심리로 열린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B씨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이 내려지기도 했다. B씨는 온라인에 성범죄, 아동학대 피의자의 신상 정보 및 선고 결과를 게시했지만, 지목된 한 20대 남성이 불법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재판부는 자의적인 정의감에 기대 사실 내지 허위사실을 게시했다"며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공개한 범행은 그 특성상 확산 속도가 빠르고, 유포된 정보를 삭제해 원상회복할 방법도 없다"고 판시했다.
수원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2021년 12월23일 항소심에서 배드파더스 대표 활동가 구본창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며 "사적인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자에게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피해자 보호에 국가는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한다"며 "교권의 문제라면 학부모의 권리 남용에 관해 국가가 어떻게 교사를 보호할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답이 나와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