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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보니…"혼자선 못해" 윗선 암시

등록 2021.02.11 13:20:17수정 2021.02.11 13: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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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1심서 징역 2년6개월 실형 법정구속

靑 "블랙리스트 단어 등장하지 않는다" 해명

판결문에 前정부 인사배제계획 상세히 판시

"靑비서관 단독 결정 안돼"…'윗선' 가능성도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2021.02.09.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2021.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청와대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법정구속된 것을 두고 "재판부 설명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명한 가운데, 판결문에는 블랙리스트 단어만 없을 뿐 지난 정부 인사 배제를 위한 일련의 과정이 상세히 판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를 위해 김 전 장관이 청와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교체 명단을 만들고 사표를 제출하도록 하는 직권남용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청와대 '윗선' 개입 가능성도 지적했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판사 김선희·임정엽·권성수)는 지난 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 10일 "블랙리스트는 특정 사안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한 지원 배제 명단을 말한다. 이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례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김 전 장관 판결문에 따르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김 전 장관은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 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하고, 환경부 공무원들은 관련 문건을 만들어 청와대 행정관과 협의했다.

환경부와 청와대는 후임 인사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특히 2017년 7월21일 작성된 '산하기관 임원 교체 BH 협의 결과' 문건에는 산하 공공기관 임원 8명에 대해 7월 내 사표를 징구해 즉시 수리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이후 환경부 공무원들은 2017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을 징구하고 나선다. 이들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과 카페에서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해 사표 제출을 요구했고, 실제 상당수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당시 사표를 제출했던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은 법정에 나와 "사표 제출 요구가 없었으면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사표를 받은 김 전 장관은 후임에 내정자 임명을 위한 본격 작업에 나섰다. 환경부에서는 임원 교체 현황 문건을 만들어 관리했다. 또 후임자 임명 서류심사·면접심사 결과를 정리해 문건화했고, 이는 청와대 보고용 문건으로도 별도 작성됐다.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환경부 공무원들은 내정자에게 면접 예상질문 자료를 제공해주는 등 '사전지원'을 하고,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위원으로 참석한 환경부 실·국장들은 내정자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현장지원'을 했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지난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1.02.09.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지난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1.02.09. [email protected]

이 과정에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직위에 청와대 몫 내정자 A씨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김 전 장관은 절차를 제대로 챙기지 않고 운영지원과에서 임추위 위원들을 접촉하지 않았다며 크게 질책했다.

또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실에서는 환경부 운영지원과에 A씨에 대한 지원 내역, 탈락 경위, 향후 대응 방안을 상세히 기재한 문건을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환경부 공무원에게 "차관이 직접 들어와 탈락한 A씨를 어떻게 할지, 앞으로 어떤 조치를 할지 책임 있게 확답해 달라"며 "차관이 보고할 때 육하원칙에 따라 소상히 하라"고 크게 타박하기도 했다.

결국 김 전 장관은 서류심사 합격자 7명을 모두 면접 심사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 처리하고, 재공모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이와 함께 재공모에서 A씨 임명이 어려울 경우 타 공공기관 직위 후보자와 교체해 임명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공모를 통한 임명이 어려워지자 김 전 장관은 A씨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라고 지시했고, 환경부 공무원들의 조력을 통해 A씨가 원하던 에너지개발 대표이사에 선임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김 전 장관은 A씨의 서류심사 탈락에 대한 문책으로 환경부 직원 2명을 전보 조치하고, 사표 제출을 않는 환경공단 상임감사의 표적 감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이뤄진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인정되고, 청와대와의 지속적인 협의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내비쳤다.

공동 피고인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며 재판부는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피고인 지위에 비춰 내정자를 확정하고 지원 결정을 하는 것이 피고인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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