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500방 물린 '무제한 사인회'…"야구선수 박용택, 잘 살았죠?"
3일 은퇴식·영구결번식 끝난 후 새벽까지 사인회
"팬들이 '덕분에 행복했다,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시더라"
"그날은 내가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박용택(43)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이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2022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 종료 후 열린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2.07.03. [email protected]
이런 은퇴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19년 간 프로에서 뛴 성공한 '야구 선수' 박용택(43)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박 위원은 지난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전에서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을 치렀다. 2002년 프로에 입성해 2020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입었던 LG의 등번호 '33' 유니폼은 영원히 박 위원의 소유로 남게 됐다.
은퇴식 자체로는 어쩌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박 위원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하루를 잊지 못할 행사로 만들었다.
그가 꺼낸 비장의 무기는 '사인'이다. 경기 전 3시간 여동안 팬들을 만나 사인을 한 박 위원은 경기 후 '무제한 사인회'를 한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사실 선수 생활 내내 사인을 해왔으니 자신의 사인이 없는 사람이 그리 많을까 싶었고,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걸 보면 포기하는 이들도 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박 위원은 "생각보다 확실히 많은 분들이 오셨다. 2~3시간 정도면 되지 않을까했는데 5시간을 넘어갔다"며 웃었다.
박용택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이 3일 롯데 자이언츠-LG트윈스와 경기를 앞두고 팬 사인회를 하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인회의 줄은 자정이 지나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야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사인회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근처에 있던 야구팬들도 속속 몰려들었다. 밤 10시 즈음 경기장 밖에서 시작된 '일일 선수' 박 위원의 사인회는 새벽 3시30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박 위원은 "롯데는 물론이고 삼성, 두산, KIA, 한화 유니폼까지 다 봤다"며 껄껄 웃었다. 그야말로 박 위원의 사인회로 야구팬들이 하나로 뭉친 셈이다.
"모기를 500방 정도 물린 것 같다. 나중에는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고 떠올린 그는 "돌아보니 그날 밥을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더라. 그러고도 몸살이 안 난 게 신기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위원은 현역 시절에도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 통했다. 그런 그에게도 5시간이 넘는 사인회는 처음이었다. "경기 전에 500분에게 사인을 한 것 같다. 최소 1000장에서 1500장이다. 경기 후에 사인해드린 분들이 1000~1500분 정도다. 사인량만 따지면 3000~4000개쯤 되지 않을까"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익히 알려졌듯 박 위원이 현역 생활을 정리한 지 이미 1년 8개월 여가 흘렀다.
그가 이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은퇴한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나. 사실 나조차도 은퇴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팬들에게도 그럴 것 같았다. 감동의 느낌이 좀 떨어질 것 같더라"고 짚었다.
이어 "그래서 축제 같은, 행사 같은 은퇴식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어려운 티켓 전쟁을 하고, 이 더운 날씨에 오신 분들에게 무언가를 꼭 해드리고 싶었다"며 굳이 '고된' 일정을 스스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구단이 준비하는 보편적인 은퇴식과 달리 박 위원은 준비부터 하나하나 미팅을 통해 의견을 냈다.
박 위원은 "구단과 함께 은퇴식을 준비하면서 '야구팬들의 기억에 남는 은퇴식'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마 은퇴식을 하면서 이렇게 구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선수는 다시 없을 거다.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하게 간섭하고, 잔소리를 했다. 구단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뭔가 밋밋할 것 같더라. 뭔가 정점을 찍을 만한 게 없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잘할 수 있는 게 있지' 싶어서 무제한으로 사인을 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박용택(43)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이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2022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 종료 후 열린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에서 불꽃놀이는 지켜보고 있다. 2022.07.03. [email protected]
특별했던 은퇴식은 고별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느 선수들처럼 준비해온 대본이나 편지를 읽는 대신 마이크를 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냈다. "그냥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박 위원의 설명.
은퇴식에서 박 위원은 "야구에 첫 발을 디딘 이후 단 하루도 즐겁게 야구를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늘 화려해 보이는 스타 플레이어에게도 말 못할 고충은 있다. 표출하지 않을 뿐이다.
이어 내뱉은 "내가 안 즐거웠어도, 여러분이 즐거웠으면 됐다"는 말은 많은 팬들에게 여러 감정을 떠오르기 했다.
박 위원은 "(사인회 때) 줄 서있는 동안 누가 교육을 시킨 것처럼 절반 이상의 분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덕분에 행복했고, 앞으로는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그게 참 기억에 남는다"면서 팬들의 따뜻한 말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겼다.
"그 어떤 선수 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보다 훨씬 더 야구를 잘했던 선배들이 엄청나게 많지만, 나만큼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선수도 드물지 않을까. 내가 야구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런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는 박 위원은 "그날은 내가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평생 잊지 못할 한 여름밤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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