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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교수 "수학은 무모순적인 어떤 정의도 허락...모든 시도가 중요"[서울대 졸업식 축사]

등록 2022.08.29 15:15:55수정 2022.08.29 15: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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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가 축사하고 있다. 허 교수는 이날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2.08.29.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가 축사하고 있다. 허 교수는 이날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2.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수연 인턴 기자 = 한국계 수학자 중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29일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6회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을 위한 축사를 전했다.

허 교수는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다"며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인 것 같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당시 자신은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15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는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라며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이 "길 잃음의 연속"이었다며,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졸업생들에게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이라며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학은 무모순적인 어떤 정의도 허락한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된다"며 "모든 시도가 소중하다.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학사 및 수리과학부 석사를 졸업한 허준이 교수는 이날 '제32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돼 수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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