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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발휘하러 왔어요"…한강 멍때리기 3년 만에 '컴백'

등록 2022.09.18 18: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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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 잠수교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

코로나로 3년만에 재개…태풍에 한차례 연기

잠옷·교복·군·경찰복 등 '다양'…'해치'도 참여

준비체조 후 90분 '멍'…32도 땡볕에 기권 속출

"햇빛 이길 수 없었다" "오랜만에 휴식 즐거워"

우승자 '한화팬'…"한화 경기보면 절로 멍 때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박광온 수습기자 = "멍때리기는 한화 팬들이 가장 잘 한다", "고3은 멍때리기에 최적화된 나이", "내 주식, 내 인생이란"

3년 만에 돌아온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 현장 시민투표에서 적잖은 호응을 받은 참가자들의 사연이다.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18일 오후 3시부터 서울 한강 잠수교에서 열렸다. 대회 창시자인 아티스트 '웁쓰양'과 서울시가 협업해 개최하는 대회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멍때리기를 가장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현대 미술작품(퍼포먼스 아트)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19년 4회 대회 이후 3년 만에 올해 5회 대회가 개최됐다. 태풍 '힌남노' 북상 영향으로 당초 4일 열려던 대회가 한차례 연기되기도 했다. 야외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총 50팀이 참여한 가운데 마스크를 쓰거나 벗은 참가자들의 모습이 엇갈렸다.

대회에서는 90분 동안 어떤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대회간 말을 할 수 없지만 마사지, 물, 부채질 등 색깔카드로 원하는 서비스를 한차례 받을 수 있다. 우승자는 심박수와 현장 시민투표를 통해 선정된다.

대체로 편안한 운동복이나 티셔츠에 반바지, 잠옷 차림을 한 채 무릎담요, 깔개, 양산 등을 준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나, 어린 아들과 경찰복을 맞춰입은 세 가족팀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 상징 캐릭터 '해치' 인형옷을 입은 참가자도 있었다.

동대문구 휘경여교 3학년인 김세진, 임아영, 김석림씨는 "평소 멍 때리는 것을 잘하는데 여기서 재능발휘를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전했다. "여기서 지면 우리는 우정 파탄"이라고 웃어보이기도 했다.

미군 군복을 걸친 참가자는 발치에 "나는 미국한국 혼혈사람입니다. 이것은 직장에서 일이 작동 안하면 모습 똑같습니다"라고 적은 종이상자를 두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email protected]



참가자들은 7분간 체조 준비운동을 한 뒤 오후 3시19분께 "여러분의 인생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유일한 90분을, 지금 시작합니다"라는 두루마리 공지로 대회가 시작됐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검은 포졸복 차림이나 흰 가운을 걸치고 부채를 든 진행요원들이 장내를 돌며 멍 때리기 여부를 '매의 눈'으로 살폈고, 일정 시간마다 심박수 체크도 했다.

잠수교가 위치한 서초구 반포동의 이날 낮 기온은 32도로 전날보다 2.1도 올랐다. 대회 시작 즈음 반포대교에 설치된 낙하형 분수대가 물을 뿜으며 더위를 식혀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자 힘든 기색을 보이는 참가자들이 나타났다.

한 여성은 "볕이 너무 뜨거운데 우산을 준비 못 했다"고 시작 10여분 만에 기권했고, '물 제공', '부채질' 등의 찬스 카드를 일찌감치 쓰는 모습도 있었다. 중도 탈락한 박채운씨는 "1등할 줄 알았는데 햇빛을 이길 수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회 시작 50분여가 지나자 기권자가 속출했다. 한국·이탈리아인 3년차 신혼부부인 어주호(32)씨와 루치아(32)씨는 "멍때리기가 아니라 거의 햇빛버티기였다. 지금 남아있는 분들이 진짜 대단한 거 같다"고 전했다.

이날 대회 우승은 서울에 사는 '한화팬' 김명엽(31)씨에게 돌아갔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응원복을 입은 김씨는 시민투표 사연에 "10년 째 한화 이글스 야구팬이다. 한화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절로 멍이 때려진다"라고 적었다.

그는 "사실 응원하는 팀이 받을 수 없는 등수를 받은 거 같은데 이것으로 만족한다"며 "어렵지 않았다. 한화 경기를 보면 자동으로 멍 때리게 되는데 그렇게 10년을 갈고 닦다보니 그냥 한화 경기 본다는 생각으로 멍때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해치 인형옷을 입고 완주한 참가자는 '특별상'을 받았다. 이 참가자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해치로서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컨디션에 전혀 문제 없다. 멍은 내 인생의 한 조각"라고 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온 윤상훈(31)씨는 "일을 하다보면 힘들 때도 많은데 멍때리기 하면서 오랜만에 휴식을 갖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며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참여해보고 싶다. 오늘 너무 재밌었고 즐거웠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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