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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심우장·이봉창 선서문과 유물, 사적·문화재 된다

등록 2019.02.12 10: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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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심우장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항일 독립 유물들이 국가 지정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각각 사적 지정,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독립운동가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1933년 서울 성북구에 건립해 거주한 곳이다.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심우(尋牛)'는 소를 사람에 비유해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의미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이른다.
심우장

심우장

심우장이 놓이는 방향을 총독부 방향을 피해 동북향으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용운의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용운이 남은 삶을 보낸 이 곳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519호 '구리 한용운 묘소'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수 있는 뜻 깊은 장소가 된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

이봉창 의사 선서문

이봉창 의사(1900~1932) 관련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유물은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백범(白凡)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3건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 선서문이다. 이 의사의 대표적 항일투쟁 유물인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13일 김구가 이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의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24일 이봉창 의사가 김구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내용을 담은 서한이다. 내용 중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라는 대체 용어로 약속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28일 김구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이 의사가 1932년 1월8일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문화재적 가치를 높인다.

이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29일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의 기폭제가 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역사적 사건이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등록될 예정이다.
등록문화재 제742호 인제성당

등록문화재 제742호 인제성당

한편문화재청은 '인제성당'과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를 각각 등록문화재 제 742, 743호로 등록했다.

'인제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포격으로 상부구조가 파괴되어 기존에 남아 있던 건물의 콘크리트 기초를 그대로 이용해 건축했다. 특히, 본당과 사제관을 한 건축물로 축조한 방법은 동시대 다른 성당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이는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등록문화재 제743호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

등록문화재 제743호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는 강원도 선교를 담당할 수녀 양성을 위한 시설이다. 1959년 신축 이후 1962년 증축되는 과정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건물 2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건축적 특징이다. 강원도 선교활동 중심지라는 공간특성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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