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日징용 유족의 사부곡…"못푼 한, 이젠 내몫"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故이상주씨 아들
"과거의 한 안고 가신 것 같아 안타까워"
일본 현지서 강제동원 故박성봉씨 아들
"부친 행적 알고 싶어, 조사 이뤄졌으면"
【서울=뉴시스】 일제 강점기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이상주씨.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상황에서, 피해자 자녀들은 당시의 '지옥도'를 가늠하면서 조금이나마 어버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이상주씨 막내아들 등희(53)씨도 그런 경우다. 동희씨는 지난 7일 전화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부친을 회상하면서 감정이 복받칠 때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아요. 꿈같아요. (돌아가신 지가) 한두 달밖에 안 됐잖아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동경 이런 것들이 점점 생기겠죠. 누구보다 고생 많이 하신 거잖아요. 강제징용 다녀오시고, 전쟁터도 다녀오시고. 이제는 쉬고 계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등희씨는 이씨 생전에 소송 등 강제징용 관련 문제로 상경할 때 매번 동행했던 아들이다.
이씨는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김용빈)에서 심리 중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당사자였다. 이씨는 지난 2월15일 별세했다. 이 사건 1심은 2013년 3월11일 제기 됐다. 약 6년 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소송은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끝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는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 부녀를 지지했었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영향이 컸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가족이 아니라 소송을 도왔던 이를 찾을 정도로 그에게는 강제징용 소송이 주는 의미가 컸다.
"아버지는 서울에 가실 때면 꼭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있다고 하셨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식이 아니라 소송을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뭔가 생에 하지 못하셨던, 고생스러웠던 과거의 한을 꼭 풀어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내면에 두고 돌아가시는 것을 옆에서 볼 때 너무나 안타까웠죠."
이씨는 1942년 10월께 충남 보령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제철소에서 노역에 내몰렸다. 하루 12시간 강도 높은 일을 하고도 팥죽 두 그릇 조차 사먹을 수 없는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44년 4월 폐에 문제가 생겨 귀국했는데, 같은 해 10월 이번에는 일본군의 강제 징집 대상이 됐다. 강제로 일본 군복을 입었던 이씨는 군 생활 중 폭행을 당해 청력 손상을 입었고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에서야 고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소송을 안 하셨으면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희망을 갖고 계셨죠. 한 번은 제가 제가 1억원 드릴 테니 잊고 사시라고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서울 가시기 전이면 며칠 전부터 매일 '그날 가야한다'고 하셨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결국 돌아가셨죠."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박진부 씨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5.08. [email protected]
강제동원 피해자 박성봉씨의 아들 진부(79)씨는 기자에게 "아버지가 어디로 잡혀갔는지, 뭐하다가 돌아가셨는지 행선지라도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1944년 6월12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후쿠시마의 한 탄광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의 강제노역에 내몰렸다고 한다. 약 한 달이 지난 7월말께 당시 4살이던 진부씨는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귀국했고 가장 역할을 해야 했죠. 힘이 들면 일본 욕을 하곤 했고 사춘기 때는 왜 일본에 아버지를 잡혀가게 했느냐는 투정도 부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한 번은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너희 아버지는 숨어있었는데 어린 네가 순사에게 알려줘서 잡혀간 거다. 네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그렇게 안 됐을 거다'라고요."
등희씨와 진부씨는 한 목소리로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희망했다. 일본이나 일본 기업에 대한 문제 제기와는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 강제징용 피해를 조사하고 아픈 과거를 위로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를 인정한 한국 법원의 판단을 대체로 거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한국의 대응으로 일본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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