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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비판, 경제 제재, 군사훈련 모두 철회하라'는 북한

등록 2019.11.21 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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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 잘 알고 있다" 발언은

스웨덴서 밝힌 정치·경제·군사 적대 정책 철회 요구

비핵화로 살 길 찾으라는 미 요구 맞받는 거꾸로 논리

비핵화 협상 거부 시사…연말 시한 앞두고 압박 강화

[서울=뉴시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가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러시아로 떠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배웅하고 있는 모습. 2019.11.18. (사진=주북한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가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러시아로 떠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배웅하고 있는 모습. 2019.11.18. (사진=주북한 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대로 끌어 올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 협상 의지를 꺽지 않고 있다. 북한이 긴장을 높이고 있지만 미국은 맞상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20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면 정상회담도 수뇌급 회담도 흥미 있는 사안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최 제1부상은 또 "핵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앞으로 협상탁(테이블)에서 내려지지 않았나 하는게 제 생각"이라고도 했다.

최 제1부상의 발언은 최근 북한이 연달아 밝힌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한층 구체화한 것이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명길 순회대사, 김영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 등 그동안 미국과 협상했던 모든 당국자들이 담화를 내고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조차 어려워졌음을 강조해왔다. 

최 제1부상은 특히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협상에 대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만큼 여기서 강의할 수도 없다" "미국 측이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모든 조치를 해제하면 될 것이고 그런 전략적 결정을 우리에게 통보하면 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문제는 북한이 미국에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이 매우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최 제1부상이 '미국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한 적대시 정책은 바로 지난달초 스웨덴에서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내용들을 말한다.

당시 김명길 북한 순회대사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정치·경제·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실천적 조치를 취해야 비핵화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정치 분야에서의 적대시정책은 북한 인권을 비판하는 정책이며 경제 분야는 각종 경제 제재를 말하고 군사 분야는 한미합동 군사연습의 완전한 중단을 말한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수십년 동안 취해온 제재 조치를 모두 풀지 않으면 비핵화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각종 제재로 압박하면서 이를 풀려면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이를 정면으로 맞받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해야 비핵화논의를 할 수 있다는 '거꾸로' 논리다.

그러면서 북한은 트럼프 미대통령이 1년 넘게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해온 것에 대해 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는 국내외 비판에 직면하자 북한이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고 6.25 참전 미군유해를 송환한 것이 성과라고 반박해 왔다.

북한이 의회의 탄핵 논의에 시달리면서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된 트럼프를 향해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음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재개 위협이 말뿐이 아님을 암시하는 외교 행보도 보이고 있다. 이번에 최선희 제1부상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미국을 향한 시위의 측면이 강하다.

최 제1부상은 러시아측과 북미협상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논의한 것은 없다"면서도 "조미(북미) 관계가 어디까지 와있나에 대해 제가 좀 설명을 했다"고 덧붙였다.

최 제1부상이 굳이 '조미관계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힌 것은 북미 핵협상에서 북한 입장을 상세히 러시아에 알림으로써 핵협상이 파행할 경우 북한이 강경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대해 배경설명을 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요컨대 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재개할 경우에 대비해 러시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도 유사한 행보를 벌써부터 취해왔다. 김수길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8월과 10월 먀오화(苗華)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과 만나 연달아 회담한 것이 바로 그런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들의 회동은 1차적으로 한동안 중단됐던 북중간 군사교류를 다시 활성화하는 의미가 크지만 북한 입장에선 북중이 혈맹임을 재확인함으로써 만약의 경우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논의가 이뤄질 때 중국이 동조하지 못하도록 단도리하는 의미 역시 큰 행사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나름 파격적인 비핵화방안을 미국에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그런 뒤 김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가진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김위원장은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면서도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이때부터 이미 미국을 향해 하노이에서 당한 수모를 되갚아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치밀하게 움직여왔음이 현 시점에서 분명해지고 있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미국이 요구하는 실무협상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10여 차례나 미사일 시험을 감행했으며 한미 군사연습이 중단되면서 더 이상 실무협상을 거부할 명분이 없자 회담에서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적대시 정책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면서 협상을 결렬시킨 것이다. 여기에 연말 시한이 다가오자 그동안 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던 분위기마저 접고 직접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미국으로선 굴욕으로 느낄 수도 있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북한에 대한 설득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에서 부장관으로 승진 발령이 난 비건 지명자는 20일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이 인준을 받을 경우 북한의 협상대표가 최선희 제1부상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지명자는 특히 "우리는 여전히 북한이 (비핵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외교의) 창이 여전히 열려 있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이 설정한 연말 시한은 "우리의 데드라인이 아니라 그들의 데드라인"이라며 북한이 예전의 도발행위를 다시 할 경우 "매우 큰 실수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빠트리지 않았다.

현재로선 북한이 연내에 미국의 비핵화 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정한 연말 시한에 얽매이길 거부하면서 협상을 계속 이어가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이 언제까지 미국을 상대로 '화풀이'를 계속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한미 군사연습의 완전 중단, 인권 비판 정책의 포기, 경제 제재의 전면적 해제 등 북한의 요구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이를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실질적으로 협상을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거 북한은 이번처럼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선회한 적이 여러차례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나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 예를 들어 미 대선이 끝나는 향후 1년 가까이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커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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