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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사망 왜 잇따르나③]"같이 죽어야만 했나"…트라우마 계속 진행형

등록 2021.07.04 0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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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소방관 2명 '순직'…남은 동료들도 '상처'

'외상후 장애' 겪는 소방관 비율 일반인의 10배↑

소방청, 치료 대책 내놓지만 실효성에 의문 제기

트라우마 치료 구심점 '심신수련원' 예산 확보 못해

미국 등서 '치료견' '장기 휴가' 시스템 치료에 도입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울산 중구 상가건물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노명래 소방교 영결식이 2일 오전 울산시청 햇빛광장에서 울산광역시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울산시는 고인에게 소방사에서 소방교로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2021.07.02. bbs@newsis.com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 울산 중구 상가건물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노명래 소방교 영결식이 2일 오전 울산시청 햇빛광장에서 울산광역시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울산시는 고인에게 소방사에서 소방교로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2021.07.02.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구미현 기자 = # "나는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약도 보탬이 되지도 않는다. 가족을 위해서 버텨왔지만 괴롭다. 또 다시 반복이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 (故 정희국 소방위가 남긴 쪽지 中)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울산을 덮쳤을 때 정희국 소방위는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후배 강기봉 대원과 함께 인명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범람한 강물에 전봇대를 붙들고 버티다 결국 둘은 급류에 휩쓸렸다. 정희국 소방위는 2.4㎞를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물살에서 벗어났지만, 강기봉 대원은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 소방위는 이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 3년간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그는 끝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2019년 8월 생을 마감했다. 정 소방위의 캐비닛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동료들은 강기봉 대원의 근무복을 발견했다. 정 소방위의 고통과 고뇌를 마주한 동료들은 오열했다.

◇잇단 화재로 소방관 2명 '순직', 남은 동료에게도 '상처'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에 이어 울산 성남동 상가 화재로 지난달 2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동료의 죽음은 남은 소방관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내가 구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감은 현장을 떠나도,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망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불현듯 튀어나온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은 불문율이다.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병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울산의 한 소방관은 "이번 (성남동 상가 화재) 사고에 대해 그 누구도 얘길 꺼내지 않는다"며 "그저 평상시와 똑같이 근무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공황장애나 PTSD 등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소방관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를 앓는 비율은 일반 국민의 10배에 이른다. 방치된 트라우마는 점점 심해지다 대개는 마음의 병으로 이어진다.

소방청이 지난해 전국 소방관 5만21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건강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경우가 2301명(4.4%)에 달했다. 정신적 고통이나 신변 비관, 가정불화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6명. 같은 기간 재난·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21명의 2.7배다.
[광주(경기)=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2021.06.21. photo@newsis.com

[광주(경기)=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트라우마 치료는 어떻게?…실상은 '치유센터' 예산조차 확보 못해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소방청에서는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치료를 위해 3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운영’, ‘마음건강진료비 사업’ 등이다. 

이 중 그나마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업은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전문가가 소방서로 찾아와 상담을 통해 PTSD 고위험군으로 판정되면 치료로 연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용률은 높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일과 중 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이 쉽지가 않다는 게 현장 소방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보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시설이 전무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찰이 9곳, 해양경찰이 4곳의 심신수련원을 가진 것과 대조적이다.

소방청은 올해 예산안에 소방 심신치유수련원(트라우마 센터) 건립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예산은 국회 상임위(행안위)를 통과했지만 예산결산위원회 최종 심의에서 빠졌다.

소방청 관계자는 "올해는 소방청 핵심사업인 심신치유수련원 건립 예산이 반영되진 않았지만 현재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내년에 예산 확보가 된다면 2025년쯤 수련원이 건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련원 건립은 지지부진하지만 2024년 말 개원 예정인 국립소방병원 안에 정신건강센터가 들어서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국립소방병원은 충북 음성군 혁신도시에 들어서며, 22개 진료과목에 300병상 규모 종합병원 급으로 지어진다. 소방병원은 4개 센터, 1개 연구소(회상치유센터 정신건강센터 근골격계재활센터 건강증진센터 소방건강연구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AP/뉴시스]지난 11월 미주리주에서 구조된 이마에 꼬리가 달린 미국 '유니콘 강아지' 나웨일이 가정에 입양되는 대신 구조단체에 남아 치료견 훈련을 받게 됐다. 사진은 11월13일 구조단체 '맥스미션' 설립자 로셸 스테픈이 나웨일을 안고 있는 모습. 2019.12.04.

[AP/뉴시스]지난 11월 미주리주에서 구조된 이마에 꼬리가 달린 미국 '유니콘 강아지' 나웨일이 가정에 입양되는 대신 구조단체에 남아 치료견 훈련을 받게 됐다. 사진은 11월13일 구조단체 '맥스미션' 설립자 로셸 스테픈이 나웨일을 안고 있는 모습. 2019.12.04.


◇해외 사례는?…트라우마 치료견, 장기 유급 휴가 제공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소방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거나 유급 휴가제 등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소방서에 '트라우마 치료견'을 배치해 소방관들의 심리치료를 돕고 있다. 치료견은 소방관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심신을 다친 이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CNN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잉글랜드 남서부 엑서터 인근 한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젊은 여성이 소방대의 '치료견'에 의해 구조됐다.

소방구조대(DSFRS)는 이 여성을 설득하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돕는 3살배기 래브라두들 '딕비'를 현장에 투입했다. 딕비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이 여성은 심경의 변화를 보였다고 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는 70㎏이 넘는 세인트 버나드종의 '클래런스'가 미국 경찰 최초로 공식 '위로견'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 밖에 일부 국가에서는 소방관에게 6개월 단위로 안식기 개념의 유급휴가를 주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해외의 선진 사례도 좋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가 절실하다"며 "휴식이 필요한 소방관이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인력 확충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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