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는 났지만…이재용 경영 행보 ‘가시밭길’ 예고
국가 경제 기여 주문…취업 제한 우려
[의왕=뉴시스] 조성우 기자 =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으로 풀려나며 인사하고 있다. 2021.08.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산업팀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로 삼성은 총수 부재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규모 투자 결정 등 다시 경영 정상화 궤도에 올라설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사면이 아닌 ‘조건부 석방’이란 점에서 공격적 경영활동에는 다소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재계의 시선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으로 삼성전자의 경영이 정상화할지로 향한다.
한편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오전 10시께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 문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며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진이 '재판은 계속 받아야 하는데 심경이 어떤지', '특혜 논란을 어떻게 보는지', '경제 활성화 대책은 무엇인지', '반도체와 백신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고려하는지' 등을 물었지만 이 부회장은 답하지 않고 준비돼 있던 차에 올라타 자리를 떴다.
이 부회장이 탄 차량은 이후 곧바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향해 11시께 서초사옥에 도착했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이날 당장 사장단 등을 소집한 공식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집무실에서 밀린 업무 현안들을 보고받고 파악하면서 경영 일선 복귀를 준비했다.
[의왕=뉴시스] 조성우 기자 =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으로 풀려나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1.08.13. [email protected]
멈췄던 경영 시계 빨라질 듯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제2 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투자 적기를 놓치면 앞으로 TSMC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50%를 차지,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TSMC는 지난 4월 앞으로 3년간 1000억 달러(114조원)를 투자해 미국에 공장 6곳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 역시 파운드리 세계 3위권인 글로벌파운드리(GF)를 300억 달러(34조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 인수에 성공하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TSMC·삼성전자·인텔의 '3강체제'가 된다.
재계는 이재용 부회장이 복귀 후 미국 파운드리 2공장 투자를 발표, 복귀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로 200여개 반도체 협력사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산업에 활력이 일 전망이다. 이 외에도 배터리, 바이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에서 과감한 투자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 중 미국 현지에 합작사를 차리지 못한 회사는 삼성SDI 뿐인 만큼 이 부회장이 어떤 결정을 할 지 주목된다.
삼성SDI는 2분기 실적발표 당시 미국에 신규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업계는 삼성SDI가 세계 4위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심각한 경영 공백을 겪었다"며 "이 부회장의 복귀가 결정된 만큼 미뤄졌던 투자결정 등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이미 형기의 60%를 넘게 복역해 가석방 요건을 충족한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지 7개월여만인 오는 13일 출소한다. 2021.08.12. [email protected]
이재용, 글로벌 인맥 재가동 나서야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CT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ASML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으로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방문 당시 이 부회장은 ASML 측과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고도화 방안과 AI 등 미래 반도체를 위한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협력 등을 협의하고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직접 살펴봤다. 이 부회장은 앞서 2016년 11월에도 삼성전자를 방문한 버닝크 CEO 등 ASML 경영진과 만났고 이어 201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 같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스웨덴 최대기업인 발렌베리그룹과의 인맥 같은 사례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 부회장은 2019년 12월 방한 중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과 국내 모처에서 만남을 가졌다.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기업이다. 스웨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 중공업기업 ABB와 은행 등 100여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 밖에 이 부회장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등 다양한 해외 기업인들과도 만남을 갖고 교류하고 있다.
수감되기 전인 지난해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외에도 여러 국가를 방문하면서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지난해 1월에는 삼성전자 마나우스법인이 있는 브라질을 방문했으며 5월에는 중국 시안의 반도체사업장을 찾았다.
또 10월 네덜란드 방문과 함께 스위스 로잔을 찾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만남을 갖는 한편 베트남 연구개발(R&D)센터를 방문하면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면담을 갖기도 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이 같은 네트워크 활동을 재개하는 데는 당분간 다소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되면서 법무부의 승인 없이는 해외 출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일단 재계에서는 이 같은 부분에 다소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복권은 아냐…취업제한 등 걸림돌 남아
지난 2017년 2월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5일 석방됐지만, 지난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1078일 만에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단, 이 부회장은 가석방 기간 중 보호관찰을 받아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따라야 하는 등 일정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거지를 바꾸거나 해외로 출국할 경우 미리 신고해야 한다. 선행을 해야 한다는 등의 준수사항도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5억원 이상의 횡령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 해당, 취업이 제한된 상태다.
다만 특경법은 법무부가 취업을 승인할 경우 제한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이 부회장 측이 취업 승인을 신청하면 법무부 산하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에서 제한을 해제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복수의 기업인들이 취업 승인 신청을 통해 취업 제한이 해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법무부는 개별 사례뿐만 아니라 승인 건수 자체를 비공개로 하고 있다.
다만 그간 몇십건의 심사가 진행된 것으로만 전해진다. 횡령 혐의로 집행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은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의 경우 법무부 취업 승인을 통해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바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앞서 지난 12일 가석방을 하루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본인의 깊은 고뇌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에는 사회 감정이 참작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가석방 후 국정농단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사회 공헌에 힘써달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재계에서는 박 장관이 '경제문제' 등을 이유로 이 부회장을 가석방한 만큼 취업 승인 절차까지 이뤄질 거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이 부회장 가석방 이후 '재벌 특혜' 등 비판 여론이 비등한 부분은 변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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