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시달려, 살던 데서 살 의욕 없네요" [4·11강릉산불 한 달]
강릉아레나 대피소 폐쇄후 이재민 489명 연수시설, 연수원, 펜션 등으로 옮겨
세끼 식사서 도시락으로 점심·저녁만 제공, 어버이날 부실 도시락 제공해 공분
6월 10일까지 거주 가능, 이후 대책은 막막…산불비대위에 한가닥 희망
어버이날 부실한 도시락이 제공되면서 공분을 샀다.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민들은 한 달째 집 없는 서러움과 불편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강릉시가 지난 1일 강릉아레나 대피소를 폐쇄하면서 10가구 이재민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연수원으로 이동했다.
217가구 489명의 이재민들은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연수 시설, 펜션, 레지던스 호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 주택, 친척, 친지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차가운 체육관 바닥 텐트(재난구호쉘터)에서 잠을 자야했던 대피소 생활보다는 나아졌다.
하지만 식사의 질은 떨어졌다.
대피소 단체 급식은 아침, 점심, 저녁 세끼에 간식까지 제공됐고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었다.
도시락으로 바뀌자 점심·저녁 하루 두 끼만 제공됐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부실한 도시락 때문에 이재민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상처가 나기도 했다.
빨래는 거주 시설에서 해결하거나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빨래 서비스를 받고 있다.
옷과 속옷은 대피소에서 도움받아 그럭저럭 걸쳤지만 여전히 넉넉하지 않다.
대피소 생활 이틀 만에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연수 시설로 옮긴 최군자(77·여)씨는 동갑내기 이웃 권옥자(77·여)씨와 한방에서 같이 지낸다.
화장실, 주방 시설이 갖춰진 거실에 방 1칸이 있는 연수 시설은 깨끗한데다 난방 시스템이 잘 갖춰져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다.
세끼 식사는 지난달부터 직접 만들어 해결해 온 터라 이번 부실 도시락 논란 때문에 마음 상할 일은 없었다.
최씨는 "어제 보험회사로부터 화재보험 보험료 일부를 받아서 은행 대출 원금을 갚았는데 은행원이 '천천히 갚으셔도 된다'고 하더라. 펜션이 다 타서 이제 수입도 없는데 매월 원금이고 이자를 어떻게 내느냐. 남의 속도 모르고…"라며 답답해했다.
최군자(77·여)씨의 동갑내기 이웃 권옥자(77·여)씨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군자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씨는 "6월10일까지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조인숙(62·여)씨 부부는 저동에서도 소나무가 울창하게 뻗은 숲에 둘러싸인 곳에 살았다.
불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곳에서 살았는데 이젠 그곳이 지옥이 됐다.
조씨는 "그날 기억을 되새기는 게 너무 힘들다"며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트라우마 때문에 너무 괴롭고 그래서 살던 데서 집을 다시 짓고 살 마음이 없어요. 월세든 전세든 집을 구해 친척집에서 나가야죠"
조씨는 "자연이 좋아서 들어가 살았는데 당장 집 지을 계획도 없고 멘붕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앞으로 2개월 후 대부분 이동주택에서 여름을 살거나 겨울까지 살아야 하는데 큰 걸로 이슈가 돼야지 자잘한 도시락으로 문제삼는게 싫었다"면서 "나는 컵라면도 괜찮다.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서 뜻을 모으면 어떨까 한다"고 했다.
펜션을 운영했던 이정훈씨는 상속받은 펜션을 개보수해 올여름 대목을 기대했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씨는 "이번 불로 집이랑 직장을 다 잃은 셈이니까. 그렇게 되면 집도 문제고, 집이 있어도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도 지금 문제인 실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이번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전선 단락의 책임이 한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불비상대책위원회에 위임 동의서를 냈고 절실한 심정으로 위원회에 들어갔다.
최양훈 비상대책위 위원장은 "저희들은 집과 직업을 모두 다 잃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며 "한전에서 진정한 사과와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데, 소송을 해서라도 대응하겠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