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출제 경력' 앞세워 문제집 장사…전문가들 "비교육적, 처벌해야"
모의고사 문제집 업체, 대표 '수능 8회 출제' 홍보
"정부 수능 출제 신뢰하는데…배신감, 상실감 줘"
교육부, 오늘부터 2주 간 '학원 집중 신고기간'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4학년도 수능에 빨간불이 켜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며 수능 출제 방향에 직접 개입했으며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사퇴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 교육계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2023.06.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경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이권 카르텔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지시한 가운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위원 경력을 앞세워 모의고사 문제를 제작·판매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비교육적인 행태라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A업체는 대표 B씨의 수능 출제위원 경력을 앞세워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을 판매해왔다. A업체가 온라인 서점에 제공한 2024학년도 수능 대비 모의고사 문제집 서평을 보면 '수능 출제위원이었던 B씨 총괄'이라는 문구가 첫 번째 포인트(point)로 강조돼 있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인 A업체는 '수능 출제위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 8차례 참여)이었던 B씨가 설립'했다고 소개돼 있다. 게다가 홈페이지에는 "B씨가 출제위원장을 맡고 수능과 동일한 수준의 출제위원들과 함께 수능과 동일한 출제시스템을 적용"해 "수능과 똑같은 모의고사, 가장 평가원스러운 모의고사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과거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현직 대학교수는 "수능을 출제해봤다고 해서 모의고사 문항을 수능에 가깝게 낼 수는 없다"며 "서약을 한 사람이 그러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다른 대학교수는 "서약서까지 썼는데, 이거는 그냥 부패"라며 "경찰을 통해 수사할 수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수능 출제위원들은 수능 출제를 위한 합숙에 들어가기 전 서약서를 쓴다. 평가원에 따르면 이 서약서에는 '비밀 유지' 조항이 있는데, 이를 어기고 출제위원 경력을 홈페이지나 프로필 등에 노출하면 조치 불이행에 대해 하루에 50만원씩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평가원 관계자는 "B씨의 경우 비밀 유지에 대한 책임이 강화된 2016년 이전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해 법적 조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B씨 외 과거 수능 출제위원이 비밀 유지 서약을 어긴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 출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학원가에서 모의고사를 출제하고, 수능시험에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는 것은 공교육과 정부의 수능 출제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배신감과 상실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23.06.01. [email protected]
과거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과거 수능 출제 경력이 있다고 수능과 가까운 문제를 더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수험생 입장에서는 이 같은 마케팅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한 고등학교의 진학지도 교사는 "수능 한 문제로 대학의 당락이나 인생이 바뀌는 상황에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수능의 영향력이 너무 강력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교육도 문제의 질이나 이런 거로 승부해야지,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과거 출제위원이 냈으니까 평가원 문제 유형과 비슷할 것 같이 권위에 호소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며 "양심상 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처벌 강화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은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며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질타한 바 있다.
전날 이 부총리는 "교육부는 내일(22일)부터 사교육 이권 카르텔, 허위·과장 광고 등 학원의 부조리에 대해 2주 간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신고 된 사안에 대해서는 교육청 등 관계기관과 힘을 모아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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