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2등, 3등도 기억하는 세상…김예지·신유빈 그리고 에드워드 리
김정환 위클리뉴시스부장
'압축 성장' 속 '1등만 기억하던 나라'의 변화
1등 못 했어도 꿈·목표 향한 노력·열정에 열광
한국인, 1등의 진정한 '의미' 알게 돼서인지도
삼립호빵 광고모델 탁구선수 신유빈.(사진=SPC삼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 삼성이 기업 광고에 사용했던 캐치프레이즈다.
당시엔 그럴 만도 했다.
천연자원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1950년대 6·25전쟁마저 겪으면서 온 국토가 잿더미가 돼버렸다.
그러나, 좌절하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1960~1980년대 국민과 기업, 정부가 부단히 노력해 간신히 후진국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 중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바로 '압축 성장'이다.
그렇다고 만족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선진국이 되려면 사람이든, 기업이든 자기 분야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했다.
'1등주의'는 여기서 출발했다.
그 그늘엔 '2등'의 설움이 있었다.
제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박빙의 승부를 펼쳤어도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원죄로 인해 그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모든 분야가 그랬다.
2010년 KBS 2TV '개그 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하자 시청자들은 공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1등 만능주의'가 더욱더 강화한 상황이었다.
한국인이 1등에 더욱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1등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세상이 돼버린 탓이 컸다.
가장 좋은 예가 2000년대 말부터 TV 방송가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갖가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1등은 거액의 상금과 푸짐한 부상까지 거머쥐었으나, 2등은 빈손으로 쓸쓸히 돌아가야 했다.
2등은 물론 3등도 상금과 부상을 받던 과거 경연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른 시상 방식이었다. 과거 2, 3등이 나눠 가지던 것들을 1등에게 모조리 몰아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방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파리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예지가 테슬라코리아 앰배서더가 됐다. (사진=플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1등만 기억하던 나라'가 근래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8월 '2024 파리하계올림픽' 때 사격 선수 김예지(임실군청)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여자 공기권총 1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한 마디로 곧 잊힐 '2등'이었다.
반전이 일어났다. 사선에 선 김예지의 프로페셔널다운 분위기에 매료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엑스'(X·옛 트위터) 소유주 일론 머스크가 "액션 영화에도 사격 세계 챔피언이 나온다면 멋질 것 같다. 김예지를 액션 영화에 캐스팅해야 한다"고 치켜세운 것이 회자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화보 촬영에 이어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 '아시아'(감독 이정섭)의 스핀오프 숏폼 시리즈 '크러쉬'에 '킬러' 역으로 캐스팅됐다. 1일엔 국내 최초로 '테슬라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또 있다. 탁구 선수 신유빈(대한항공)이다.
그는 예전 같았으면 관심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파리 올림픽에서 '혼합 복식'과 '단체전'에서 각각 메달을 땄지만, 모두 '동메달'에 머무른 탓이다.
그럼에도 신유빈은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bhc치킨 '뿌링클', 동원F&B '그릴리', SPC삼립 '삼립호빵' 등 굵직한 브랜드 모델 자리를 휩쓸고 있다. '제2의 김연아'라고 불릴 정도다.
[워싱턴=AP/뉴시스] 한국계 셰프 에드워드 리(왼쪽)가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24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백악관 국빈만찬(26일)에 제공할 음식 언론 사전 공개 행사에 참석해 웃고 있다. 2023.04.25.
이 사람도 있다. 재미교포 셰프 에드워드 리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유명 요리사'를 뜻하는 '백수저'로 나온 그는 '무명 요리사'를 의미하는 '흑수저'인 나폴리 맛피아(권성준)에게 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우승자인 나폴리 맛피아가 상금(3억원)을 '독식'했다.
2010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이자 '요식 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 2회 수상,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의 '국빈 만찬 초청 요리사' 등 화려한 타이틀이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온라인에선 많은 시청자가 에드워드 리를 '진정한 우승자'로 호평, 아니 추앙하고 있다.
김예지, 신유빈, 그리고 에드워드 리. 1등이 아닌 이들에게 2024년 대한민국이 열광한다. 이유는 뭘까.
아마도 꿈과 목표를 향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땀'이 증명했고, '눈빛'이 설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인이 어느덧 1등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돼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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