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주 프레드 해리스 민주당상원의원(94) 별세…76년 대선 도전
원주민 권리, 60년대 소요사태에서 진보적 정치인의 길 걸어
1976년 대선경선 실패 후 말년엔 뉴멕시코 대학 정치학교수
[AP/뉴시스 ] 프레드 해리스 전 민주당 상원의원이 2004년 뉴멕시코 자택에서 촬영한 사진. 진보적 정치인의 길을 걸으며 원주민등 모든 사람의 발언권과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웠던 그는 11월 24일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24.11.25.
오클라호마주 민주당 인사들을 비롯해 그를 알던 사람들은 25일 진보정치의 선구자이며 대선까지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이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또한 1960년대 정치적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며 행동의 일선에 나섰던 해리스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오클라호마주 민주당원들은 해리스가 역사적 격동기인 1960년대에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1969년에서 1970년까지 당의 통합과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1968년의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정치적 혼란기의 와중이었지만,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리스가 해냈다는 것이다.
알리샤 앤드루스 오클라호마주 민주당 위원장은 " 프레드 해리스는 우리에게 원칙과 따뜻한 마음의 지도력 양쪽을 다 가지고 사람들을 이끄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 하도록 독려했다"며 해리스를 추모했다.
해리스는 올해에도 오클라호마주의 민주당 선출직 입후보자를 위해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초청 연사로 나와서 진보와 단합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앤드루스는 "시카고에서 그 분 곁의 연단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힘과 위업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힘이며 유산이라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클라호마의 촉토족 인디언 출신이며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인 칼린 프리도 자기는 해리스 상원의원 같은 진보적이고 위대한 사람을 공직자 중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분은 우리에게도 친구이며 멘토였고 영웅이었다. 오클라호마와 미국은 강력한 투사의 목소리를 가진 인물을 잃었다"고 프리는 말했다. 그러면서 "미 원주민 사회를 위한 그 분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해리스 의원 휘하에서 일했다는 제프 베롱은 "해리스 의원은 오클라호마의 보물이자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정치인이었다. 자신의 출신지와 처지를 잊지 않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평등, 기회의 균등을 위해 싸웠던 분이다"라고 회고했다.
해리스는 주 상원의원으로 8년을 봉직한 뒤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했다. 상원의원으로 8년 재직후 1976년 대통령 경선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오클라호마주 민주당 인사들은 해리스가 1960년대 시위와 소요사태를 조사하는 연방 시민소요 조사자문위원회의 마지막 멤버였다고 말한다. 그 당시 위원들 중에서 가장 최근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해리스는 대선도전 이후 즉시 정계를 은퇴하고 뉴멕시코로 이사해서 뉴멕시코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말년을 보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