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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양은 범죄입니다"…국가가 해외에 입양 보낸 아이들

등록 2025.03.26 15: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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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 해외입양 56명 진실규명

98명 중 42명은 서류 없어 '보류'

입양 가기로 한 아동 바꿔치기도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해외 입양인 김유리 씨가 눈물을 흘리며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3.26.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해외 입양인 김유리 씨가 눈물을 흘리며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2025.03.26.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우지은 기자 = "제 입양은 범죄입니다."

김유리씨는 1984년 프랑스로 입양됐다. 양부는 소아성애자였다. 10대 때부터 양부에게 학대당하며 눈물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씨는 "지난 39년 동안 자신이 기아(버려진 아이)인 줄 알고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씨는 버려지지 않았다. 김씨의 어머니는 임시로 김씨를 고아원에 맡겼다. 입양동의서도 작성하지 않았지만 김씨는 프랑스로 입양 당했다.

김씨는 자신의 입양 배경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국가 해외입양사업이 만든 피해자들이 평생 안아야 하는 트라우마를 다시 평가하고 권고사항을 검토해달라"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6일 오전 10시께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제102차 위원회에서 신청인 56명에 대해 1차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히고, 이날 2년7개월 동안 진행한 해외입양 과정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은 지난 1964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에서 해외 11개국으로 입양된 367명이 해외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조작돼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조사를 신청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수많은 아동을 해외로 보내는 과정에서 헌법과 국제협약으로 보장된 입양인들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적법한 동의 없는 입양 절차 ▲허위 기아발견신고 ▲허위로 작성된 영문 입양 기록 ▲요식행위인 부양의무자 확인공고 ▲아동 신원 바꿔치기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양부모 수요에 맞춘 아동 대량 송출 ▲'짐짝'처럼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 ▲입양대상 아동 확보를 위한 강제적 기부금 ▲후견인 직무 미이행 등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기아발견조서에 발견 시점을 제외한 발견 장소, 부속품, 신고자 등 정보가 이미 서식에 인쇄돼 매번 동일하게 작성됐다. (사진=진실화해위 제공) 2025.03.2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기아발견조서에 발견 시점을 제외한 발견 장소, 부속품, 신고자 등 정보가 이미 서식에 인쇄돼 매번 동일하게 작성됐다. (사진=진실화해위 제공) 2025.03.26.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허위 기아발견신고는 진실규명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기아발견조서는 '고아호적'을 만드는 근거가 되는데, 이 조서에는 발견 장소·부속품·신고자 등 정보가 이미 인쇄돼 있는 상태였다.

발견 장소 등이 이미 인쇄된 종이에 발견 시점만 수기로 작성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산, 광주 등 각지에서 발견된 아동 다수가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발견됐다고 허위로 신고됐다. 쌍문동은 입양알선기관 사무실 주소였다.

아동 신원 바꿔치기도 문제로 지적됐다. 입양 수속을 진행 중인 아동이 숨지거나 연고자가 아동을 다시 데려가는 경우, 입양알선기관이 다른 아동을 해당 아동으로 신원 조작해 예정대로 출국시킨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의 공식 사과 ▲입양인의 시민권 취득 여부 실태조사 및 후속대책 마련 ▲신원정보 조작 등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 ▲입양 정보 제공 시스템 개선 ▲입양인 가족 상봉에 대한 실질적 지원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조속 비준을 권고했다.

진실규명 피해자로 인정된 김유리씨는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 치료를 제공하고,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로 인정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은 소송, 분쟁 없이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으로부터 보상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덴마크로 입양됐던 한분영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나와 피해사실을 털어놨지만 진실규명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보류됐다. 전날 진실화해위는 위원회에서 총 98명 중 56명은 인정, 42명은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보류 결정했다.

한씨는 뉴시스에 "오늘 진짜 행복한 날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제가 인정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 같은 사례를 이렇게 쉽게 진실규명에서 제외할 수 있으면 친구들 사례는 또 어떨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다른 위원들은 피해자로 인정할 만큼 자료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동의 못 하는 결정"이라며 "다시 한번 나머지 위원들이 전향적으로 생각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단지 지나간 아픔만 들춰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14만명 이상의 해외 입양아들과 입양국들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입양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후속 조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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