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가 문자를 보시려나…"산불 경보시스템 개선 시급"
"고령층엔 무용…재난문자 기반 산불 경보시스템 한계"
대피장소 여러번 정정…대피체계 중요성 간과 지적도
산불방지책 세웠지만…"취약층 우선 대피" 원론적 언급만
![[안동=뉴시스] 김금보 기자 = 28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공장이 산불피해를 입어 파괴돼있다. 2025.03.28. kgb@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28/NISI20250328_0020750922_web.jpg?rnd=20250328114355)
[안동=뉴시스] 김금보 기자 = 28일 경북 안동시 남후면 남후농공단지 공장이 산불피해를 입어 파괴돼있다. 2025.03.28. kgb@newsis.com
30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9시 기준 산불로 인한 사상자는 75명으로 집계됐다. 산불로 인한 사망·부상자는 지난 23일 10명(오후 9시 기준)이었으나 27일 60명(오후 8시 기준), 28일 67명(오후 8시 기준), 29일 75명(오후 8시 기준) 등으로 확대됐다.
희생자들 대다수는 급속히 번진 산불로 대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거나 급하게 대피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피해가 커진 데는 미흡했던 대피 체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북 영덕군은 지난 26일 오전 0시7분 주민들에게 강구면, 남정면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가 30분 만에 그곳까지 불이 번지자 포항 방면 대피로 안내를 바꿨다.
경북 청송군은 지난 25~26일 이틀간 대피 장소를 세번이나 정정했다. 25일 오후엔 파천면 주민 대피장소를 소노벨에서 국민체육센터로, 26일엔 안덕면 주민에게 청송중고등학교 강당 대신 '안덕면 대피계획에 따른 안전한 곳'으로 불과 8분 만에 지시를 바꿨다.
재난문자에 대피 장소가 명시되지 않거나 수시로 변경되는 혼선도 있었다. 경북 안동시는 지난 25일 오후 6시7분 '임동면, 임하면 주민들은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란다'고 발송했다가 1시간 3분 후에야 '임동면 대곡1리,2리 마을 주민들은 지금 즉시 길주초등학교로 대피하라'고 장소를 명시했다.
산간 지역 고령층 주민들은 재난문자 기반 경보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들은 재난문자를 잘 확인하지 못하거나, 구형 휴대폰을 사용해 정보 수신에서 누락된다. 영양, 청송 등 경북 지역 산불 확산 당시 노인들은 동네 이·통장이나 이웃 주민의 연락을 받고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하며 주민들이 의성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해있다. 2025.03.22. lmy@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22/NISI20250322_0020742745_web.jpg?rnd=20250322211152)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하며 주민들이 의성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해있다. 2025.03.22. lmy@newsis.com
이번 산불 사태로 재난문자에 의존하는 산불 경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행안부는 지난달 13일 재난문자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재난문자가 국민들에게 재난 정보를 제공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형산불 상황에서 재난문자 기반의 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산간 지역 노인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인터넷, 휴대폰 활용에 어려움이 있고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와 재난 약자들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정보 취득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피 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산림청은 지난 1월 41페이지에 달하는 산불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했으나, 대피 관련 내용은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긴급문자메시지 및 재난문자 자막방송을 활용해 위기상황에서 대국민에게 신속히 전파한다"거나 "지역산불방지대책본부에서 긴급문자메시지 및 재난문자 자막방송을 송출할 경우 즉시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에 공유한다"와 같은 추상적인 내용뿐이었다.
대피 장소에 대해서도 "마을회관, 학교 등 대피장소 경로를 선정하고 마을방송 등을 활용해 안내한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환자 등 안전 취약계층을 우선적으로 대피 조치한다" 정도의 원론적인 대책만 언급돼있다.
![[의성=뉴시스] 김금보 기자 = 26일 대형 산불로 전소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가 불탔다. 2025.03.26. kgb@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26/NISI20250326_0020747774_web.jpg?rnd=20250326122305)
[의성=뉴시스] 김금보 기자 = 26일 대형 산불로 전소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가 불탔다. 2025.03.26. kgb@newsis.com
전문가들은 자력으로 대피가 어려운 고령층에게도 정확히 경보를 전달하고 대피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훈련도 필수적이다. 대상·장소별로 재난상황에서의 대피 방법을 미리 교육하면 산불 발생 시 대피가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교수는 "재난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 직원과 연계해 취약자들의 대피를 돕거나 원거리 거주자에게는 전화로 상황을 확인하는 방법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주민 스스로 알고 있어야 문자 하나만으로도 반응할 수 있다"며 "특히 고령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재난 대응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피 훈련과 교육 캠페인을 실시해 비상 시 개인의 역할을 숙지하는 '재난 대비'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여러 기관이 협력해 산불 고위험 지역의 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통합 명령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재난 대응 훈련에서 현장 대응과 상황 판단뿐 아니라 대규모 대피 절차와 조치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훈련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