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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계속되는 '경찰관 극단적 선택'

등록 2021.11.12 14:14:06수정 2021.11.12 15: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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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극단 선택한 경찰관 증가 추세

올해 1월~11월11일까지 21명 극단적 선택

마음동행센터 상담사 1명이 427명꼴 상담

[기자수첩]계속되는 '경찰관 극단적 선택'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기댈 수도 없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참고 묵묵히 버텨내는 수밖에요."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공무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최근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파출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관 A씨가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해 현장에서 숨졌다.

지난 2월에는 충북 진천의 한 파출소 소속 50대 경찰관 B씨가 창고에서 목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B씨는 결국 숨을 거뒀다.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B씨는 창고에 홀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관들의 극단적 선택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은 2019년 20명, 지난해 24명으로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1월부터 이달 11일 기준 21명의 경찰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일이 잦은 경찰관들의 극단적 선택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사건 현장을 수습하며 생기는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경찰관의 극단적 선택 비율은 다른 특수직 공무원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지난 2018년 발표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 수를 인구 10만명으로 환산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찰관은 한 해 약 20명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같은 조건 아래 소방관은 10명 내외, 집배원은 5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수직 공무원 중에서 유독 경찰관의 극단적 선택이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선 근무자들은 적나라한 사건·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수습하는 데서 오는 후유증 및 인사불성의 주취자(술에 취한 사람)를 다루는 '사람 상대 업무'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토로한다.

기자 역시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스트레스 호소를 자주 들었다. 동이 트기 전인 새벽 시간대에 번화가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과 홍대 등 주변에 위치한 지구대·파출소를 찾으면 거의 매번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주취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파출소 안에 있는 주취자들 대부분은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이따금 경찰관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건장한 외국 남성이 술에 취해 욕설을 하면서 자신을 말리는 경찰관의 뺨을 때리는 장면도 봤다. 기자가 놀란 눈으로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을 쳐다보면 '항상 있는 일이다. 괜찮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특수직 공무원이 겪는 직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지만 정작 이들 경찰관을 위한 사후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후유증 등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상담 서비스를 운영 중이지만 상담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 대다수의 경찰관들이 사실상 업무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스스로 감당하는 실정이다.

경찰이 현재 운영 중인 '마음동행센터' 등 소속 상담사들은 지난해 기준 1명이 427명의 경찰관을 상담하고 있다고 한다. 개별 상담 건수는 833건으로 어림잡아 1000건을 웃돈다. 과연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찰관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 안전 수호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핵심 인력인 경찰관들의 극단적 선택이 늘고 있지만, 이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예산 지원 등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다. 경찰이 바로 서야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도 지켜질 수 있다. 지팡이가 힘 없이 부러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정부가 일선 경찰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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