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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변기서 구정물 솟구쳐"…대피소 시민들 '망연자실'

등록 2022.08.09 12:44:11수정 2022.08.09 13: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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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거주민들, 임시거주시설로 대피

"무작정 퍼낼 생각만…새벽에 포기하고 나와"

"자다가 축축해서 일어나니 변기에서 역류"

"출근 못 하고 잘 곳도 없어…허망하고 슬퍼"

"119는 못 도와준다, 집주인은 물 퍼내라고"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집에 물이 차자 시민들은 9일 동작구민체육센터로 대피했다. kez@newsis.com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집에 물이 차자 시민들은 9일 동작구민체육센터로 대피했다. [email protected]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화장실에서 똥물이 솟구쳐서 거실과 방으로 퍼지는데, 무작정 퍼내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결국 새벽 2시에 집을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지난 8일 오후 8시40분, 퇴근 후 막걸리를 마시던 김모(50)씨는 밥상 아래로 물이 차자 양동이를 들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싱크대 하수구에서 악취가 나는 검은 구정물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며 "저녁에 막걸리 먹은 힘으로 새벽 2시까지 물을 퍼내다가 결국 집을 나와 이곳 임시거주시설로 왔다"고 말했다.

9일 동작구청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신대방동 주민 20여명이 서울 동작구 동작구민체육센터로 대피했다.

서울 동작구 일대에 호우가 집중되면서 동작구청은 이날 새벽 도림천 인근 신대방 1동과 신대방 2동 주민들에게 임시주거시설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체육센터 내부 체육관에는 벽을 따라 담요와 화장지, 베개, 칫솔, 비누 등이 들어있는 응급구호품 상자가 15개 배치돼 있었다. 대피한 주민들은 차가운 나무 바닥에 담요를 깔고 앉거나 누워있었다.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서림혜씨의 집에 물이 찼다. (사진=서림혜씨 제공)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서림혜씨의 집에 물이 찼다. (사진=서림혜씨 제공)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뉴시스가 만난 피해 주민들은 며칠밤을 샌 듯 지쳐있었고,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에 침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점점 물이 차오르자 결국 집을 떠나 이곳으로 대피해야 했다고 한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2동의 한 반지하집에 살고 있는 김씨는 이날 새벽 4시까지 10곳 이상의 모텔을 전전했지만, 빈방을 찾지 못하고 임시거주시설로 대피했다.

김씨의 아내 김모(51)씨는 "경찰과 소방에 수십 번 전화했지만 출동했다는 문자만 보내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집을 나오라고만 했다"며 "옆집에 사는 90대 할머니도 가방 하나 들고 비를 맞고 서 있길래 근처 안전한 집에 모셔드리고 우리도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방동에 살고있는 서림혜(54)씨는 퇴근 후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었는데,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고 한다.

서씨는 "벌떡 일어나보니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에서 똥물이 솟구치고 있었다"며 "양동이로 물을 퍼내다가 집주인이 준 양수기로 물을 뺐지만 들어오는 물이 더 많았다. 물이 무릎까지 찬 상태에서 집을 포기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아내 허모(49)씨는 고개를 떨군 채 "일도 못 나가고, 잘 곳도 없고, 허망하고 슬프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김모(50)씨의 집에 물이 찼다. (사진=김씨 제공)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전재훈 기자=지난 8일 밤부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김모(50)씨의 집에 물이 찼다. (사진=김씨 제공) 2022.08.09. *재판매 및 DB 금지


홍모(22)씨와 김모(22)씨 커플도 이날 새벽 반지하집을 급히 떠나 동작구민체육센터로 대피했다.

홍씨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집이라 걱정을 안 하고 있었는데, 새벽 3시쯤에 화장실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며 "방 안에도 발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물이 확 들이닥칠지 몰라서 5시에 이곳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인 김씨는 "119에 전화해도 신고가 수백건 쌓여 도와줄 수 없다고 했고, 집주인은 직접 물을 퍼내라고만 할 뿐이다"라며 "이런 경험이 처음인데, 업체들도 연락을 받지 않아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날 밤 신대방동에는 오후 9시께까지 한 시간 동안 비가 136.5㎜나 쏟아졌다. 이는 1942년 8월5일 서울의 시간당 강수량 역대 최고치(118.6㎜)를 80년 만에 넘어선 기록이다.

폭우는 이날에도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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