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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서거 두고 서방과 옛 식민국가 반응 상반

등록 2022.09.13 12:49:43수정 2022.09.13 14: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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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은 여왕의 70년 통치 기리는데 여념없지만

아프리카·남아시아 각국에선 신랄한 비난 봇물

[에든버러=AP/뉴시스] 12일(현지시간) 영국 에든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성당 주변에서 시민들이 성당 안에 있는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을 보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2022.09.13.

[에든버러=AP/뉴시스] 12일(현지시간) 영국 에든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성당 주변에서 시민들이 성당 안에 있는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을 보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2022.09.1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로 전세계가 떠들썩하지만 일부 국가들에선 여왕이 남긴 식민통치 유산으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케냐에서 저명한 자유의 투사의 딸 엘리자베스 키마티(66)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소식을 듣고 영국과 여왕 가족들을 위로했다. "영국과 왕실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여왕이 남긴 어두운 면도 떠올렸다.

키마티의 자녀들은 엘리자베스 윈저가 왕위를 승계한 직후 자신들의 아버지 데단 키마티가 이끈 반군들과 1년 넘게 영국이 전투를 벌였다고 했다. 데단 키마티는 한때 테러리스트로 불렸지만 지금은 케냐의 영웅이다. 이들은 당시 숨진 사람이 수천명이 넘고 10만명 이상이 강제수용소에 잡혀 있었다고 했다.

영국군이 어머니를 고문한 일도 회상했다. 아버지가 반복된 청원에도 결국 영국 정부에 의해 교수형당했으며 어머니가 여왕에게 수도 없이 편지를 써 남편이 묻힌 곳을 알려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도 했다.

이블린 키마티(51)는 "여왕도 여성이고 어머니이자 아내다. 다른 여자와 아내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주 여왕이 서거한 뒤 서방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목소리가 크지만 영국의 전 식민지였던 모든 나라들에서의 반응은 훨씬 복잡하다. 특히 치열한 투쟁 끝에 엘리자베스의 치하에서 벗어난 나라들에서 그렇다.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의 지도자들이 여왕에 경의를 표하지만 주민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당한 커다란 피해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온라인상에서 또는 사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와 생전에 저지른 과오와 그의 죽음에 대한 존중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취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요하네스버그의 작가 시포 흘롱와네는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식민주의가 있었다는 것을 솔직히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했다. "서방에서는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식민주의 잔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시대 관행이 영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의 가난이 인종 차별에 따른 가난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후손들이 아직도 남아공의 주요 광산들을 장악하고 있다.

흘롱와네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특권층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결정을 내린 건 책임을 져야한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 안되나?"고 말했다.

여왕의 서거와 함께 아프리카와 남아시가 각국에서 영국 왕실이 이들 나라에서 거둬들인 부를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도와 남아공에서 각각 "선물로 받은" 코히누르 다이아몬드와 아프리카의 거대한 별 다이아몬드 등이 대표적이다.

흘롱와네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별은 1905년 백인 소유 광산에서 채굴된 것으로 왕실에 헌납됐다는 이야기는 영국 박물관의 많은 공예품들에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악수를 하고 넘겨줬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거래였다고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

케냐의 작가 겸 활동가인 샤일자 파텔은 엘리자베스가 서거했을 때 "신화 제조기"가 즉시 가동되기 시작된 걸 알았다고 했다. 언론 보도에 대해 파텔은 트윗에서 애버데어국립공원의 트리탑스 호텔 이야기를 꺼냈다. 25살이던 엘리자베스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즉위하게 된 걸 알았던 곳으로 영국군인들이 이곳의 자유전사들을 "총쏘기 게임"하듯 쓰러트렸던 장소다.

파텔은 "영국인들이 케냐에서 한 일을 전세계에서 똑같이 저질렀다. 이제 겨우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기 시작했는데 거짓과 제국의 신화 만들기가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영국은 2013년 케냐 반군을 고문한 것을 사과하고 생존자들에게 2000만달러(약 275억원)을 배상하기도 했었다. 이는 생존자 1인당 4000달러(약 551만원) 꼴이다.

조부모가 영국 통치하의 다카에서 살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미국인 사다프 칸(22)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면서 가족들간에 다툼이 생겼다.

칸은 조부모들이 1947년 영국령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될 당시 자기 부모들들과 함께 얻어맞으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면서 "그들이 여왕의 서거를 슬퍼하는게 이상하다"고 했다. 그는 여왕이 남아시아에서 "번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파키스탄에서 독립했다.

칸은 백인 우월주의와 식민주의가 남아시아 문화에 여전히 뚜렷이 남아 있다면서 나이가 들면서 "영국 제국이 남아시아에 안긴 공포"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인도-파키스탄 분리 당시 작은 아버지가 실종된 인도인 의사 아누즈 찬드라는 영국 식민주의가 인도에 남긴 피해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 피해가 지속되도록 역할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영국식 스타일과 계층"에 대한 향수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테네시주에 사는 찬드라는 "여왕이 놀라운 우아함과 권위를 발휘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식민주의가 제3세계에 남긴 피해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태생 카네기멜런대 교수인 우주 아냐는 여왕을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학살한 제국"이라고 부르며 고통속에 숨졌기를 바란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트위터는 아냐의 트윗이 자사 정책을 위반했다며 삭제했고 카네기 멜런대도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선조들이 피비린내나는 독립전쟁에서 숨진 아냐는 "가족 절반을 학살하고 난민이 되도록 만든, 인종학살을 저지를 정부를 감독한 왕국에 경멸 말고는" 표현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 대한 비난이 트위터에 쏟아지자 나이지리아 언론인 데이비드 훈데인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무시하는 일, 영국 왕국이 어떻고 왕실이 무엇을 표상하는지를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보고"놀랐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는 영국이 통치하면서 크게 이질적인 북부와 남부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형성됐다. 영국은 1967년 내전이 일어나자 북부에 통치권을 줬고 연방정부에 자금과 무기를 제공했다. 역사가들은 내전으로 남부 이그보 주민 100만명 이상이 숨졌으며 상당수가 굶어죽었다고 평가한다.

훈데인은 당시 비극을 직접 당한 가족들은 그 비극을 초래한 정책을 실시한 국가에 분노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감히 어떻게? 예의를 갖춰라.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그러나 적당한 때가 언제란 말인가? 왜 적당한 때를 찾아야 하는가? 사람들에 서열을 매겨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도록 만든게 누군데"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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