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더럽혀지지 않을만큼의 순결 위하여, 연극 '시련'

2일 개막에 앞서 1일 미디어에 공개된 연극 '시련'은 고전의 고귀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프락터의 숭고함은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깃발'에 이상을 내걸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모순을 그린 유치환의 '깃발'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상과 순결과 고결함에 대해 읊고 노래하는 고전은 이처럼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통한다.
올해 탄생 100주년·서거 10주년을 맞은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1953년 발표한 희곡이 바탕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밀러의 또 다른 대표작.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렸던 미국 현실을 비판했다.

악마가 보인다는 거짓 고백을 하고 이를 증명하는 서명을 끝내 거부한다. 평범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생(生)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죽음을 택하는 장면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1951~1891)는 시(詩)가 도처에 있다고 했지만, 일상의 시적 허용을 체감하기에 빠듯한 2015년 한국은 세일럼처럼 광기가 도처에 있다. 세일럼의 마녀재판처럼 툭하면 '종북'으로 몰리고,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원칙과 주장을 바꾸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형을 선고하는 광기의 '댄포스' 같은 권력이 산재한다.

연극은 1막과 2막으로 나뉘는데, 크게 3개 구성이다. 광기에 점점 휩쓸리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1막은 마치 심리드라마 같다. 막판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을 점층적으로 쌓는 박정희식 긴장감 있는 연출이 일품이다.
2막의 초중반까지는 프락터와 아비게일이 댄포스 앞에서 서로 결백하다는 증거를 내놓고, 이를 반박하는 법정 드라마식으로 그려진다. 2막의 마지막은 프락터의 내적 갈등이 고조에 달하는 고전극 문법을 따르는 듯하다.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미 좌석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시련'이 연극적으로 얼마나 강력하고 얼마나 사회적으로 밀접한 지를 관객들이 아는 것 같다"고 봤다. 프로시니엄, 즉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전형적인 극장 구조에서는 이례적으로 무대 뒤편에 객석 36석도 마련한다. 관객이 서로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는데, 서로를 고발하는 세일럼의 분위기를 간접 체험하게 된다.
프락터 지현준, 댄포스 이순재·이호성, 아비게일 정운선, 엘리자베스 프락터 채국희. 윤색 고영범, 미술 신선희, 조명 김창기, 음악 장영규·김선. 러닝타임 160분(휴식 15분 포함).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한편 5일 공연 후 공연읽기 프로그램으로 '잔혹과 광기의 역사, 마녀사냥 이야기'가 펼쳐진다. 6일 공연 뒤에는 예술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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