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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우크라 곳곳에 재건 위한 자원봉사 열풍

등록 2022.05.09 1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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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아직 자금을 전쟁에만 쏟아붓는 상황이지만

자원봉사자들 나서 도시 기반 시설 속속 다시 가동

전투 계속되는 하르키우에선 폭격 뒤 청소 반복

[마리우폴=AP/뉴시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전투로 파손된 건물 앞을 청소하고 있다. 마리우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전쟁의 잔해를 치우며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04.28.

[마리우폴=AP/뉴시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전투로 파손된 건물 앞을 청소하고 있다. 마리우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전쟁의 잔해를 치우며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04.28.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한달 전까지만해도 모든 상품이 약탈돼 텅 비고 파편에 부서져 있던 우크라이나 수도 인근 부차의 한 시장 상점이지만 지금은 선글래스를 끼고 킥보드를 탄 채 엄마에게 사탕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돌아다닌다.

이 시장에서 매대를 운영하는 페트로 투로트센코(74)는 젊은 시절 부차의 유리공장에서 일했었다. 유리공장은 러시아군이 주민들을 고문한 장소였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 22명이 처형돼 거리에 방치됐고 마을 전체가 무너진 건물 잔해와 불에 탄 자동차, 즉석 공동묘지가 됐었다.

트로트센코와 부인은 지하실에 몇 주동안이나 숨어 지냈다. 울타리를 뜯어 빗물을 끓여 마시고 귀리죽을 끓여 먹으며 간신히 살아 남았다.

이렇게 처참했던 부차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장이 열리고 폭탄으로 파괴된 도로 웅덩이를 다시 메우고 포장했다. 키이우로 가는 도시열차가 재개됐다. 물과 전기도 대부분 다시 공급되고 있으며 줍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재건에 최소 6000억달러(약 765조4200억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역 당국자들과 주민들은 그같은 원조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전쟁이 언제 끝날 지 모르지만 도시를 청소하고 재건하고 있다.

재건 노력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물리칠 것이라는 낙관론을 보여준다. 자원봉사자들이 재건을 주도하고 있고 정부는 아직 전쟁에만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부차러첨 전쟁의 상흔이 깊은 지역이나 하르키우처럼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도 재건 노력이 진행중이다. 우크라아나가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임을 러시아군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증명하려는 모습이다.

하르키우에서 유통회사에 다니는 스타스 보차르니코우는 전쟁 초기 지하 방공호에서 불과 일주일동안 지냈을 뿐인데도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낀다. 그는 매일 폭격맞은 지역을 청소하는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과 부서진 건물을 무너트릴 것인지 아니면 되살릴 것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인다.

우크라이나 제 2의 도시인 하르키우는 러시아국경에서 불과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70여일 동안 계속 폭격과 공습을 당해왔고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됐다. 최소한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건물은 단 한 채도 남지 않았다. 보차르니코우는 자원봉사자들을 버스에 태워 시내 곳곳으로 파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서울=뉴시스]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의 파괴된 시청 건물 앞 화단에 팬지꽃을 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출처=워싱턴포스트) 2022.5.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의 파괴된 시청 건물 앞 화단에 팬지꽃을 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출처=워싱턴포스트) 2022.5.8. *재판매 및 DB 금지

시의 응급부서에서 집속탄을 제거됐다는 말을 듣고 청소하러간 현장에서는 폭격 소리가 계속 들리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 청소에 나선 것은 "쓰레기 더미 속에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며칠 전 파괴된 요리학교 청소엔 60대 할머니부터 12살 소년까지 참여했다. 이들이 깨진 벽돌을 치우고 요리책과 조리기구들을 간수했다.

돈받고 일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보차르니코우가 말했다. 대부분 담배나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식사만을 제공한다고 했다.

19살의 다리나 포타펜코(19)가 "하르키우를 어떻게 다시 일으켰는지를 내 자식과 손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 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이 다음날 박격포를 연달아 맞아 지붕에 구멍이 뚫리고 무너져 내린 주택지역에서 일했다. 연구소 직원이던 마리나 스멜리안스카이아(53)이 오렌지색 장갑을 낀 챈 삽으로 건물 앞 계단의 잔해들을 치웠다.

처음 이곳에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때 동네가 너무 처참하게 부서져 청소가 가능할 지조차 자신없었다. 치우고 난 날 밤 러시아군이 쏜 로켓에 다시 폐허가 돼 치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일한 지 2주가 넘는다. 치우고 또 치운다.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긴 어렵다"고 했다.

하르키우에 폭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청소하는 걸 막진 못한다. 거리엔 다시 튤립이 심어졌고 크게 부서진 집들에서 깨진 유리창이 제거되고 있다.

파괴된 시의 지역 청사에서 청소하던 발렌티나 오를로바(73)는 지난주 팬지를 심었다. 정오부터 일을 시작해 2시면 끝내야 했다. "그때가 되면 보통 폭격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마리우폴=AP/뉴시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자원봉사자와 시 근로자들이 전투로 파손된 마리우폴 극장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마리우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전쟁의 잔해를 치우며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04.28.

[마리우폴=AP/뉴시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자원봉사자와 시 근로자들이 전투로 파손된 마리우폴 극장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마리우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전쟁의 잔해를 치우며 도시를 청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04.28.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성공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몇 주동안 전투가 이어질 전망이다. 전투가 끝나야 자원봉사자들의 작업이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부차, 이프린, 호스토멜 등 크게 파괴된 키이우 인근 지역처럼 복원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전쟁 전 인구 6만이던 이프린에선 노동자들이 임금 절반만 받고 수도와 하수도를 복원했다. 아르투르 자호디렌코 이프린 수도국장은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없이 일했다"고 말했다. 복구 장비는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쉰 이프린 시장은 며칠 새 1만6000여명의 주민들이 돌아왔다면서 복원 작업을 서둘러 5월15일까지는 모든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몇 주 새 은행이 다시 문을 열고 유치원도 여러 곳 문을 열었다. 러시아군 저격수들이 탈출하는 주민들을 저격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키이우로 가는 다리는 완전히 파괴됐었지만 지금은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북부에 봄이 와 키이우 인근엔 민들레가 활짝 피었고 잔디도 새로 자랐다. 밝은 색 빨래들이 마당에 나부낀다. 이프린 한 공원에선 스케이드보드를 탄 소년 둘이 길을 건너 핑크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여자친구를 만났다.

러시아군에 점령됐을 때도 시에 남았던 마르쿠쉰 시장은 최근 시 재건을 위해 무료 봉사를 해줄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공모를 했다. 10여명 정도가 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여 요청이 쏟아졌다.

그는 "오늘까지 121명이 왔다. 121명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늘 몇 곳을 둘러봤고 앞으로 몇 주 동안 그들이 설계도를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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