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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사, 국내 최초 통일신라 투조 '금동귀면' 출토

등록 2018.09.04 17: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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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황용사지 시굴조사 현장보고회 개최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황용사에서 출토된 금동귀면. 2018.09.04.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photo@newsis.com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황용사에서 출토된 금동귀면. 2018.09.04.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email protected]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북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의 황용사 절터에서 국내 최초로 통일신라시대 금동귀면이 출토됐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4일 걸이가 있는 투조 금동귀면을 비롯해 석불, 소조불, 용두편, 하대석 편 등 사찰의 격을 나타내는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황용사는 계곡 주변에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축조한 산지형 가람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건물지 5동, 탑지, 축대, 석렬 등 다양한 유구가 중복돼 있다. 
 
특히, 현재 쌍탑이 남아있는 구역의 경우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고려시대에는 주변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중창되는 등 변화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황용사의 사역이 현재 추정 사역보다 훨씬 넓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2013년부터 전국의 폐사지를 대상으로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을 진행 중이며, 지난 7월 황용사터 시굴조사를 시작했다.

황용사는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황룡사지와는 구분되며, 선덕여왕 2년(633년)에 창건된 것으로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기록됐다. 당시 명칭은 황둔사(黃芚寺)라고 불렸으며, 소성왕대에 황용사(黃龍寺)로 바뀐 후 중창, 중수 등의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사세를 유지해 왔다.

조사 전부터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쌍탑을 비롯해 고려시대 승탑, 초석, 석축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정비 및 보수가 진행되지 않았고 조사착수 당시에도 산죽, 수목 등이 유구와 뒤엉킨 채 일부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조사가 시급함을 인지하고 사역과 성격을 확인하고자 추정사역에 대한 폭넓은 시굴조사가 진행됐다.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황용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 2018.09.04.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photo@newsis.com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황용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 2018.09.04.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email protected]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황용사에 대한 추가조사 및 정비가 이뤄진다면 경주지역의 또 다른 불교문화 명소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청은 오는 6일 오후 경주시 황용동 황용사 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개최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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