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④]갈등에서 범죄로…누적된 감정, 언젠간 터진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증오범죄 전이 우려
혐오 감정 응집 일부 커뮤니티 '화약고' 위험
대립과 분열 야기, 공동체에 크고 작은 손실
여론 다양성이 아니라 열린 사회의 적 기능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비용 초래 불가피
【바르샤바 =AP/뉴시스】 폴란드의 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1961년도 사진.
혐오는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을 향한 불쾌감이나 증오 등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반복되고 증폭되는 과정에서 정도가 심해지면 특정 집단에 속한 다수를 겨냥한 범죄로 발현되기까지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3제국(나치)은 처음에 유대인, 집시는 아리아인과 다르다는 '차이'를 조직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면서 점차 집단적 혐오가 형성되고 공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홀로코스트(Holocaust)로 폭발했다.
나치의 집단학살은 '증오 범죄(hate crime)'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증오범죄나 '편견범죄(bias crime)'는 인종이나 관습, 국적, 사상, 종교, 성별, 성적지향 등을 근거로 형성된 적대감이나 편견 따위가 동기로 작용한 범죄 행위를 지칭한다.
미국 큐클럭스클랜(KKK)단의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한 테러,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백호주의(白濠主義)를 내세운 폭력 등도 포함된다.
【서울=뉴시스】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과 댓글에서 특정 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 성적대상화한 표현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07.31. (사진=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제공)
국내에서 인종이나 종교 등을 대상으로 한 전형적인 증오범죄 발생 정도는 아직 적은 편이다. 하지만 공격적 현상이 점차 강도를 더하면서 관련 범죄에 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노래방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이후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증오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적으로 퍼졌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묻지마 범죄'의 양태를 보였지만, 범인이 피해망상을 갖고, 손상된 자존감에 대한 분노를 여성을 상대로 표출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증오범죄로 해석할 여지가 상당하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의 희생자를 낸 유영철 사건, 2006년 4월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발생한 강호순 사건 등도 증오범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범행 동기 속에서 여성에 대한 증오나 사회적인 편견, 차별 등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몇 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성소수자를 상대로 한 묻지마식 폭행 또한 증오범죄로 해석될 수 있다.
혐오 감정이 응집된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증오범죄의 화약고가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젠더·지역·세대·이데올로기적 갈등과 결부된 과격한 표현들이 일상적으로 집약되고 증폭되는 공간이다.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은 일상 다반사다. '워마드'에서는 남성 일반을 향한 맹렬한 증오, 천주교에 관한 적대감 등이 큰 물의를 일으켜 여론의 비판과 질타가 쏟아졌지만 변화는 없다. 오히려 내부적 결집만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런 커뮤니티들엔 특정 집단을 상대로 황산 테러를 하겠다거나 염산을 뿌리겠다는 글, 불을 지르겠다거나 버스 안에서 흉기를 겨냥한 사진 등이 빈번하게 게시돼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법률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모욕, 협박에 해당되는 범죄가 될 정도로 비방 정도가 강한 사례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여성 사장이 손님을 가장해 찾아온 30대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조사 결과 가해 남성 배모(31)씨는 지난 5월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여성 홀로 주택가에서 왁싱숍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2017.08.06. [email protected]
혐오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돼 갈등의 촉매 역할을 한다. 범죄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혐오의 공공연한 표출은 대립과 분열을 야기하고 구성원에게 상처를 주는 등 공동체에 크고 작은 손실을 입힌다
일례로 학교에서는 고급 아파트 브랜드가 아닌 곳에 사는 급우를 '휴거(휴먼시아 거지)' 또는 '주거(주공아파트 거지)' 등으로 부르면서 조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토대로 다른 아이들을 얕잡아보거나 약자로 치부하는 행위다. 멸시를 가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증오의 불씨를 배태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학교에서 생김새가 다르다거나 부모 가운데 하나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기피의 대상이 된다. 특히 외양이 비서구권 출신처럼 생겼을 경우 따돌림의 정도가 심해진다고 한다. 이는 집단적 트라우마로 자리잡기 쉽다.
또 국제화를 거치며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과거보다 줄었다지만 출신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차별하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최근의 예멘 난민 등을 향한 반감과 낙인찍기는 위태로운 수준이다.
대학교에서는 입학 전형에 따라 구분 짓기를 하고 출신지나 출신 고교 등으로 선을 그으면서 경계 안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을 '벌레'로 지칭하는 사례도 있다.
지역이나 세대를 둘러싼 갈등은 고질적이다. 공동체 속의 다양한 대립 요소는 정치·경제·사회적 비용을 다각도로 초래한다.
◇폭력적 언행 만연 우려…여론 다양성이 아니라 열린 사회의 적
집단과 조직에서 구분과 구별이 생기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 특정 대상을 싫어하거나 피하려는 감정 자체를 인위적으로 부정하거나 교정하려는 시도는 자칫 사회의 다양성을 훼손할 위험도 있다.
하지만 혐오 감정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형태로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하며 집단화·노골화하고 실생활에서 타인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언행이 만연한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여론의 다양성이 아니라 열린 사회의 적으로 기능할 따름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는 모든 사회에 있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서구 사회는 이미 혐오 경험이 있고 우리는 이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라며 "하지만 서구에서는 명시적으로 공공연하게 혐오가 발현되지 않는 반면에 한국은 외부로 표출되고 정치적 의제로 비화된다는 것이 다른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의 표출은 사회가 안정화되는 국면에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계층, 세대 간 등 여러 간극이 크고 불평등이 팽배한 상황에서 사회적 신뢰가 얇다 보니 혐오감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자기합리화 수준으로 전락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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