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피지기]"위험해서 축하합니다"…재건축 안전진단이 뭐길래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에…신청 단지들 속속 탈락
서울시 "기준 완화해 달라"…국토부 "시장 불안"
공급 확대 추진·시장 불안 차단 동시에 가능할까
[서울=뉴시스]
낡은 아파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플랜카드죠? 여기서의 '경축'은 아시다시피 내가 사는 아파트가 안전해서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낡아서 위험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뜻이죠. 엄밀히 말하면 '통과'가 아니라 '낙제점수를 받았다'고 표현해야 정확한데요. 그런데도 축하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낡아서 위험하니, 재건축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주택의 노후 정도에 따라 구조의 안전성, 보수비용, 주거환경 등을 평가하고 재건축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재건축이 본격화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A~E 단계 중 E등급을 받으면 즉시 재건축이, D는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합니다. A~C등급은 재건축이 불가합니다.
현 정부 들어 안전진단 기준은 대폭 강화됐습니다. 구조 안전성 가중치는 높이고 주거환경 비중은 낮췄는데, 쉽게 말하면 당장 무너질 정도가 아니라면 생활의 불편함으로는 재건축을 할 수 없다는 뜻이 되겠네요.
예를 들면 수도관이 낡아 녹물이 나오거나, 지하주차장이 없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것 정도로는 집을 부수고 새로 짓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재건축이 어려워지면서 이 같은 생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차라리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단지들도 늘어나고 있죠.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에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아직 완강합니다. 재건축을 손댔다가 투기수요가 커지며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무너뜨릴까 걱정하는 것이죠.
기준 완화는 요원한 가운데 일부 단지는 최근 안전진단 결과를 통보받고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명일동 고덕주공 9단지입니다. 지난해 1차 안전진단에서 51.29점으로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다가, 최근 2차 안전진단에서 점수가 무려 10점 이상이나 더 올라 62.70점(C등급)으로 '유지보수' 등급을 받았습니다. 목동9단지와 11단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렇다보니 안전진단 신청을 미루는 단지도 나왔습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 6단지는 지난 4월 1차에서 D등급을 받았는데요. 서울시가 국토부에 기준 완화를 요구한 만큼 이 결과를 보고 2차 안전진단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재건축을 풀어주면 단기간에 집값이 급등할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서울 도심 내 공급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 이외에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별다른 도리도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재건축을 마냥 틀어막으면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최근 간담회를 갖고 주택시장 안정과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손을 잡았습니다. 공급 확대는 추진하되, 투기 수요로 인해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막자는 게 공동 목표입니다. 두 목표가 조화롭게 추진될 지 여부가 궁금해집니다.
'집피지기' = '집을 알고 나를 알면 집 걱정을 덜 수 있다'는 뜻으로, 부동산 관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한 연재물입니다. 어떤 궁금증이든 속 시원하게 풀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