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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잘알' 그들만의 대결에 질식당한 민주주의

등록 2025.01.06 13: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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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비상계엄은 대통령 통치행위인가 내란죄인가,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 가능한가,  고위공직자수사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나, 영장 판사의 특정 법조항 배제는 적법한가, 탄핵사유에서 내란죄를 빼면 국회에서 소추안을 재의결 해야 하나.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정치권, 정부, 법조계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은 각종 법 해석과 집행을 놓고 전방위로 충돌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저지냐, 조기 대선이냐 둘 중 하나의 목표를 놓고 갈라져 노골적으로 법 기술을 동원, 사법체계가 대혼란에 빠졌다.

정치권은 각자의 목표에 맞춰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정부에선 대행의 권한을 놓고 국무위원 간에 편이 갈렸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전례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판사는 윤 대통령 체포 영장에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군사상 직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핵임자 승낙없이 압수수색할 수 없다)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해 논란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 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할 것을 더불어민주당에 권유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법잘알(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법치주의를 수호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치 논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법 해석은 제각각이고 사법부는 스스로 권위마저 실추시켰다. 법 집행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는 판국이니, 오죽했으면 12.3 계엄 사태 이후 '법알못'인 국민들이 '헌법 열공 중'이겠나.

안타깝게도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해도 수많은 공백과 애매모호함이 존재해 법 기술자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이 때문에 법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급기야 그토록 어렵사리 구축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임마뉴엘 칸트가 200년 전에 "법의 정의를 찾는 건 아직도 미완성"이라 하지 않았나.

평생 검사밥을 먹은 윤 대통령도, 변호사 출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법을 쥐락펴락하는 데에 도가 텄다.
자신에게 권력을 쥐어줄 법을 만들고, 이를 거부하고, 재판을 지연시키는 것 쯤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권한이며,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하면 될 일이다.

입법과 사법체계가 훼손되면 민주주의는 무엇으로 지켜낼 수 있나.
 
정당 정치와 민주주의에 천착해온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하버드대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헌법이라고 하는 보호 장치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지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 해도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두 가지 기본 규범을 그는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라고 명명했다.

상호 관용이란,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혐오하더라도 경쟁하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다. 제도적 자제는 지속적인 자기 통제와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음으로써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다.

한국 정치에서 상호 관용과 자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관용'과 '자제'가 깃들 자리는 없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군인들을 국회에 보냈다. 대통령은 "헌법의 틀안에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며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했다.

야당대표는 유례없는 입법 독재를 자행했다. 국가기관장과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남발하고 행정부 예산도 마음대로 주물러 행정부를 마비시켰다. 이윽고 12.3 비상계엄 사태후 기다렸다는 듯, 의회의 가장 파괴적 무기라 불리는 '대통령 탄핵소추'를 진두지휘, 결국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자신의 재판에 대해선 법기술로 지연작전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식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렁에서 국민들을 구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것도 법과 정치 그리고 리더가 해야 한다.

혼돈의 와중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쟁 집단의 주장을 배척하고,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 통제가 없다면 백번 개헌해도 이 정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우선돼야할 것은 개헌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반성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40년 간 노력해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규범을 준수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한 레비츠키의 조언을 새겨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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