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는 늘고 쓸데는 많고"…전기료 인상에만 목매는 한전
누적부채 137조…반년 만에 4.8조원 늘어
부채비율 증가 등 재무건전성 지표 악화
올해 흑자 예상했지만 연료비 상승 '암초'
RPS 이행부담금 등 정책비용도 증가 추세
신재생 설비·한전공대 등 장기 지출도 예정
전기료 인상 묘수 없어…부실화 속도 우려
고강도 자구책은 뒷전…"국민 부담만 커져"
[세종=뉴시스] 한국전력 나주 본사 전경. (사진=한국전력 제공)
[세종=뉴시스] 고은결 기자 = 한국전력공사의 누적 부채가 6개월 만에 무려 5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등 재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연료비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며 연료비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책비용, 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등은 하반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내년 개교를 앞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및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로 인한 장기 지출도 예정돼 있다.
이런 가운데 한전이 적극적인 재무건전성 강화 노력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전체 매출에서 전기판매 수익 비중이 절대적이다. 부채를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전기요금인상인 것이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해 당장 실현이 어려운 전기료 인상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나 고강도 자구 노력을 통한 부채 절감이 유의미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누적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손쉬운 전기료 인상에만 눈독을 들이는 한전에게는 뼈아픈 지적인 셈이다.
26일 한전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137조2902억원으로 지난해 말(132조4753억원)보다 약 4조8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187.5%에서 197%로 약 10%포인트(p) 증가하고, 유동부채 증가로 인해 유동비율은 79%에서 69%로 떨어졌다. 반년새 재무건전성 지표 악화가 눈에 띄는 가운데 올해 연간 실적의 적자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앞서 한전은 '2020~2024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서 당기순이익은 지난해와 올해는 연료비 하락으로 흑자 전환하고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 이후에는 연료비 상승과 환경 비용 증가 등으로 이익이 감소하거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실적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시행이 유보되며 상반기 이미 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낸 상황이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력량계 모습. 2021.03.22. [email protected]
한전의 올해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28조6000억원으로 기저효과와 경기 회복세 등에 힘입어 1년 전보다 판매량은 3.8% 증가했다. 연료비·전력구입비는 17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5조900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늘어 판매수익은 1.1% 증가에 그쳤다.
아울러 연료비, 전력구입비 증가로 약 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경기 회복으로 판매량이 늘고, 탄소배출권 가격이 하락한데다 멕시코 노르테 등 해외 발전 사업 매출이 늘었는데도 적자폭이 수천억원에 이른 것이다.
이 가운데 한전은 원자재 가격 상승, 에너지 전환 비용 등으로 올해 적자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국제유가와 연동하는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유류 등 연료 가격은 국제 유가와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호주 뉴캐슬 전력용 연료탄의 최근 52주 중 톤(t)당 최저 가격은 지난해 8월28일 기록한 47.99달러다. 그러나 약 1년 뒤인 이달 13일에 최근 52주 최고치인 175.76달러를 찍었다. 20일 기준 가격은 174.74달러로 연초 대비 116.32% 올랐다.
두바이유 가격도 지난 12일 기준 배럴당 70.52달러로 지난해 11월(36.3달러)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올랐다. 연초(52.49달러)와 비교해도 34%가량 뛰었다.
LNG 가격은 올해 4월 1톤당 385.5달러로 주춤했지만 5월 407.7달러로 상승 전환해 6월 459.7달러를 찍었다. 올 상반기 전력구입비가 유가 상승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2% 늘어난 가운데 하반기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전은 이처럼 연료 가격에 오락가락하는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2·3분기에는 국민 생활 안정을 이유로 인상에 제동을 걸어 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나주=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전남 나주 빛가람 전망대를 방문해 한전공대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2019.07.12. [email protected]
이 가운데 '정책 비용'인 재생에너지 비용 부담도 늘고 있다. 한전은 발전공기업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물량을 보전해 줘야 한다. RPS 제도는 공급의무자인 설비용량 500㎿ 이상 발전사업자에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게 하는 제도다.
한전은 발전사업자들이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비용과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 비용을 보전한다. 관련 비용은 구입전력비에 포함돼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이런 RPS 이행부담금 정산 규모는 갈수록 늘게 된다.
앞서 RPS 의무 비율은 지난해 7%에서 올해 9%로 늘어났고, 이는 한전의 전력구입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지난 4월20일 공포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오는 10월21일 시행되며 RPS 의무비율 상한이 25%까지 확대된다.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비용 등 환경비용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외에도 한전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장기적인 비용 지출이 예정돼 있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목표로 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은 63.8GW인데, 한전 전력그룹사는 이 기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42.6GW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전공대에도 상당한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설립이 추진된 한전공대는 오는 2031년까지 설립·운영에 총 1조600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남도와 나주시가 10년간 총 2000억원을 투입하고, 캠퍼스 부지를 제공해 3670억원을 지원한다. 정부도 지자체수준의 재정분담을 할 예정이지만 나머지 비용은 한전과 전력그룹사가 부담해야 한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인근 문을 닫은 상점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놓여 있다. 2021.08.02. [email protected]
이런 상황에서 한전의 고강도 자구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전은 해외 신재생 사업, 에너지 신사업 등으로 수익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한전의 전체 매출 중 전기 판매가 90% 수준인 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실적 개선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다음에는 고강도 자구노력이 재무 개선에 영향을 도움이 될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앞서 한전은 지난해 연말 전기요금 체계개편안 발표 당시 경영 효율화 방안으로 전력공급비용 증가율을 매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안만 제시했다. 지난 2013년에 내놓은 '강력한 부채절감 대책'과 비교하면, 증가 상한선을 설정하는 소극적 방안으로 읽힐 소지도 있다.
당시 대책을 보면 임금 인상분 및 성과급 반납, 처분가능자산 매각, 원가 절감 등 총 6조원 규모의 부채절감 방안이 담겼다. 해당 대책이 나오기 전인 2012년 연말 기준 한전 부채총계는 95조1000억원, 부채비율은 186.2%였다. 올해 상반기 말보다 양호한 수준이다.
일단 한전은 다음 달 중 4분기 전기요금 변동안을 작성해 정부에 제출, 최종 인가를 받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 연료비 상승세로 인상 압박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물가 상승 및 내년 3월 대선 등 부가적 요소를 고려해 3개 분기 연속으로 인상을 유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그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한전의 부실화는 더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기업 한전의 적자는 국민이 혈세로 갚아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 한전의 부채 증가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한전과 전력그룹사는 해외 신재생 사업 확대, 에너지 신사업 모델 개발, 탄소중립 핵심기술 개발 등 신규 수익 창출과 이익 개선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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