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장애인 40% "먹는약 뭔지 몰라"…인권위 "인권침해"
방문조사 결과 건강권·경제권 등 인권 열악
한 방에 침상 없이 7명 배치…최저기준 미달
인권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인권 개선 권고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방문조사 결과 입소자의 10명 중 4명은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등 장애인 거주 시설 내 인권 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20일 "장애인 거주 시설의 인권 침해 관련 긴급구제 신청이나 진정이 지속적으로 접수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개소를 대상으로 시설 점검에 나섰다"며 시설 점검 내용과 권고안을 공개했다.
인권위의 방문조사 결과 입소 장애인들은 계약서 대리 작성이나 과밀 수용, 건강권과 경제적 활동의 자유 제한 등 다방면에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인권위는 입소 장애인 응답자 77명 중 25명(32.5%)만이 시설 이용 계약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입소 장애인 대부분이 입소 여부를 가족 등 보호자가 주도해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이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 장애인 당사자가 계약 주체가 돼야 한다.
또 조사대상 10개 시설 중 4개소에서 4인실 이상의 침실을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개소에서는 개인별 침상 없이 7명까지 배치했다. 이는 1인당 5㎡의 면적을 보장하고, 1실당 4인 이하를 배치해야 한다는 '장애인 거주시설 서비스 최저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인권위는 시설 입소 장애인의 의료 지원과 건강권 보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면접조사 결과 응답자 56명 중 22명(39.3%)은 복용하는 약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시설에서는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이 있는 입소 장애인에 대해 별도의 식단을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아울러 입소 장애인은 대부분 통장을 직접 관리하고 있지 않아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 10개 시설 중 7개소에서 시설장이나 직원이 입소 장애인의 신분증과 개인통장을 관리하고 있었고, 응답자 74명 중 7명(9.5%)만이 통장을 직접 관리한다고 답했다. '금전 출납에 대한 설명을 들었냐'는 질문에는 73명 중 36명(49.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조사대상 시설 모두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인권지킴이단을 구성·운영하고 있지만, 입소 장애인 74명 중 28명(37.8%)만이 인권지킴이단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개 시설의 경우 동일 재단 내 시설 직원 2명이 인권지킴이단으로 위촉돼 있거나, 인근 사회복지시설장이 단원으로 위촉되는 등 인권지킴이단의 독립적 구성과 운영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이외에도 인권위는 시설이 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자립을 지원하거나 대책을 강구하는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입소 장애인 다수가 외출과 면회 제한으로 불편함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4일 보건복지부 장관과 시설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장애인 거주시설 정원 하향과 인권 구제 활동을 위한 점검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1실 정원을 '8명 이하'에서 '4명'으로 개정할 것 ▲시설장이 아닌 지자체장이나 지역 장애인인권위원회가 인권지킴이단을 직접 위촉할 것 등을 권고했다.
또 방문조사 대상 시설의 관할 지자체장에게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시설장에게 지적장애인에 대한 시설 이용 의뢰 시 입소 의뢰 대상의 특이사항을 사전 안내할 것 ▲입소 장애인의 자발적 동의 여부와 자기 결정권 보장 여부에 대해 점검할 것 ▲건강에 문제가 있는 입소자의 경우 맞춤 식단을 제공하고 보호자에게 투약 내용을 통지할 것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따른 지자체별 자립지원 계획을 수립·이행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장애인 거주시설 생활인 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노숙인 등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 증진을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시설 생활인의 인권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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