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복선을 넘은 색채의 쾌감…홍승혜 "20년 만에 네모 감옥 탈출"
국제갤러리서 9년 만 개인전...2004년 전시 2탄
흑백 픽셀 작업과 다른 알록달록 '유기적 기하학'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갤러리 1관과 3관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서 홍승혜는 벽화부터 조각, 사운드, 조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다채로운 문법을 선보인다.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제갤러리에 먼저 봄이 왔다. 노랑, 파랑,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 색채가 천진하게 난만하다.
9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홍승혜 작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보여준다.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물들입니다."
9일 국제갤러리 서울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마티스가 스승"이라며 "색채가 주는 기쁨을 오마주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 유치원 같기도 한 전시장은 알록달록 색채의 향연이다. 전시장 1관에 노랑색 파란색으로 칠한 벽은 마티스에게 헌정하는 벽화다.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벽면 가득 장식하던 마티스의 파피에 데쿠페(papier découpé)를 기리며 1관 각 방의 벽면 모서리를 오려낸 '레몬 자르기(Le Citron découpé/Homage à Matisse)'와 '하늘 자르기(Le ciel découpé/Homage à Matisse)'를 제시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2023.02.09. [email protected]
홍승혜, 봄이 오면, 2023Archival pigment print, uv print on glass, maple wood frame 50.7 × 40.7 cm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전 흑백의 사람, 계단 등 픽셀 작업과 달리 색채로 채워진 면과 선 드로잉들은 막힘이 없다. 단순해 보이지만 묘한 리듬감이 공간을 흔들고 있다.
"유기적인 형태죠. 풀, 꽃을 그리던 시절로 돌아갔어요. 20년 만의 (네모)감옥 탈출이기도 해요."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2탄으로 펼친 이번 전시는 '네모의 그리드'에서 탈출한 해방감을 전한다. 픽셀 기반의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양새의 도형으로 '아마추어' 같은 정직한 노동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별 꽃 타원 등으로 나온 평면 작업들은 새롭게 배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일러스트 연습장'이라고 했다. 독특한 가구처럼 보이는 작품도 "하다 보니 나왔다." 모든 게 유기적인 형태로 무계획적으로 나왔다는 작품들이지만 반듯하고 단정하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하나도 어긋남이 없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러움도 충분히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깨달았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사진은 작품 '파티션'을 통해 본 작품 '나선'.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사진은 작품 '꽃병'(오른쪽)과 작품 '시소'. 2023.02.09. [email protected]
화가지만 표현하고 싶은 게 없었고 그릴게 없어 오히려 색을 칠할 때 마음이 편했다는 그는 1997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붓을 버리고 픽셀로 구성된 자신만의 무대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추상적인 상태, 순수한 형태, 그 위치에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미술 그 자체, 구조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었어요."
홍승혜 작업 특징은 ‘유기적 기하학’. 어렵게 들리는 이 말에 대해 작가는 '조형적인 쾌(快)'라는 말로 설명했다.
"'마티스가 정물이나 풍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들이 화면들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공간과 공간에 들어가 있는 대상이 맺는 관계들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디스플레이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작가에게 결국 유기적 기하학의 논리는 '근원적인 예술론이자 삶의 방식'이다. 그는 "백지에서 싹이 돋는다"면서 "예측 불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내 안에 있었던 형태"라고 했다.
"물감 하나를 툭 떨어뜨려 놓아도 아름다운 것 처럼, 그 공간에서 주는 울림을 전하고 싶어요."
디자인을 융합해 순수 미술의 금기를 깨트린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이미지들이 '쾌'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여긴다. "어디에 놓여 있고 배경에 무슨 색이 있고 오브제가 어떻게 놓여 있을 때가 쾌적한가의 그 조형 자체, 공간을 장악해가는 '조형적인 쾌'가 중요합니다."
국제갤러리 1관(K1) 홍승혜 개인전.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린 시절 동화책 한 권을 20번씩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이 사고를 지배한다며 환갑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소녀 감성을 보였다.
이번 전시 제목도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 영화 주제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했다. 순수한 미술 조형물 뿐 아니라 테이블과 조명 기구 등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오브제가 유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3관에 선보인 전시는 홍승혜표 작업의 총합으로 무도회장 같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표지판 같던 픽셀의 사람들이 입체화되고 오르골 같은 음악소리와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무대는 그야말로 '인스타 각' 인증을 부르는 장면이다. 공간을 구축한 유기적 기하학 추상이 실천되는 공간이자 낮과 밤을 장악한 색채의 쾌감을 전한다. 3월19일까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 홍승혜 개인전에 선보인 갤러리 3관 전시 작품 '봄이 오면'.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3관 전시 작품 '봄이 오면'.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개최했다.사진은 갤러리 3관 전시 작품 '봄이 오면'. 2023.02.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9일 국제갤러리에서 홍승혜 작가가 어린시절 별명에 착안한 자화상 '홍당무' 작품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3.02.09. [email protected]
홍승혜 작가는?
1959년 서울 출생으로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유기적 기하학'(국제갤러리, 1997), '광장사각廣場四角'(아뜰리에 에르메스, 2012), '회상回想'(국제갤러리, 2014), '점·선·면'(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6)을 비롯하여 30여 회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성곡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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