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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도 책임" 중대재해 '1호 판결'…삼표산업 등 영향 미치나

등록 2023.04.06 17:01:46수정 2023.04.06 19: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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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 대표에 징역형 집행유예

"경영 책임자도 중대재해 책임…의미있는 판결" 평가

노동계 "솜방망이"반발…향후 재판·법 개정 영향 주목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강지은 고홍주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유죄'로 나오면서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도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집행유예' 처벌 수위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 1호 사건'인 삼표산업 등 향후 다른 재판과 중대재해법 개정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김동원 판사)은 6일 중대재해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 A씨 등에 대한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는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1년 3개월 만에 나온 '1호 판결'이다. 법인인 온유파트너스에는 벌금 3000만원, 안전관리자인 현장소장에는 벌금 500만원이 각각 내려졌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자 사망 등 발생 시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5월 경기 고양시 소재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 추락사와 관련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법상 경영 책임자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선고인 만큼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돼왔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이날 "대표 A씨는 경영 책임자로서 중대재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위반했다"며 "(공사현장에)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해 피해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시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이전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라 현장소장 등 안전관리자만 처벌 받았는데 대표이사도 그 책임이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중대재해법 취지를 받아들여 경영 책임자를 처벌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판결"이며 "특히 원청 대표도 중대재해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논평을 내고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원청 기업 대표이사에게 형사 처벌이 선고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지난 1월2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규탄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2023.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지난 1월2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규탄 메시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2023.01.26. [email protected]

다만 법원이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것을 두고는 상반된 반응이 나온다.

재판부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만연한 안전난간 임의 철거 등 관행도 사고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며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유족에게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위로금을 지불하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A씨 등은 공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러한 양형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예전 같으면 벌금 500만원 내외로 선고됐다"며 "형량이 상당히 센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도 "그간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경영 책임자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기대했던 노동계는 '솜방망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한국노총은 "사실상 산안법 형량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경영계의 (과도한 처벌) 주장이 과장된 엄살임이 증명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중대재해법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1심이기는 하지만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선고인 만큼 다른 중대재해 관련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26일에는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한국제강 대표 B씨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전 교수는 "한국제강은 현재 무죄 여부를 다투고 있어 법원이 고의나 인과관계 등을 어떻게 보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지난해 1월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 소방과 경찰 등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2022.01.29. chocrystal@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양주=뉴시스] 조수정 기자 = 지난해 1월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 소방과 경찰 등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2022.0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이번 판결을 계기로 '중대재해 1호 사건'인 삼표산업에 이목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채석장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져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데다 지난달 31일 검찰이 대표이사가 아닌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물을 수 있는 경영 책임자로 판단하고 재판에 넘기면서다.

검찰이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그룹 오너를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중대재해법상 경영 책임자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법원의 판단에 노동계와 경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 교수는 "오너를 기소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어서 이런 경우 법원이 과연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그 오너도 경영 책임자로 처벌될 것인가가 향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중대재해법 개정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 1월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을 맞아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중대재해법 개선 논의에 착수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이 과도하다며 개정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이번 판결은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사실상 전제하고 있고, 법 취지에 맞게 선고해 과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며 "향후 법을 해석, 집행하는 데 있어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류 변호사는 "판례를 통해 어느 정도 정리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경영 책임자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방향으로 개정 논의가 있을 수 있다"며 "삼표산업 판결에 따라 노사 어느 쪽이든 개정 요구를 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까지 TF를 운영하면서 지난 1년간 시행된 중대재해법의 추진 현황과 한계, 특성 등을 진단하고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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