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조' 소리 나오는 임금체불…"구속한다" 칼 빼든 정부
고용부, 관계부처 합동 "임금체불 엄정 대처" 거듭 의지
임금체불, 30% 급증한 1조원대…악덕 사업주 강제수사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신고 임금체불 8조6248억
임금 돌려받기 쉽지 않아…추석 앞 택시기사 분신 시도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관계부처 합동 임금체불 근절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3.09.25. [email protected]
사업장 근로감독 강화와 함께 상습·악의적인 사업주에 대해서는 강제수사 등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시름을 더는 데 실질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정식 고용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21일 국토교통부와 함께 임금체불 다발 사업장인 건설업을 찾아 불시 단속과 엄단을 예고한 바 있는데, 임금체불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정부가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임금체불 근절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최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소세를 유지하던 임금체불은 올해 들어 다시 증가하며 8월 말 기준 1조141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796억원)보다 29.7%(2615억원) 급증한 것이다. 피해 근로자도 18만 명에 달한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신고된 체불임금액은 무려 8조6248억원이었다.
[서울=뉴시스] 최근 5년7개월간 국내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액이 8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체불임금의 52%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있었고 제조업일수록, 30인 미만의 소기업일수록 체불액이 높았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이 중 건설업이 특히 심각하다.
건설경기 둔화와 고물가에 따른 자재비 상승 등으로 올해 상반기 건설업 체불액은 1966억원을 웃돈다. 전년 동기(1444억원) 대비 36.2% 급증했다. 전체 체불액 가운데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3.9%나 된다.
대유위니아 계열사 '위니아전자'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근로자 409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 3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임금체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임금체불 근절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장관은 "임금체불은 피해 근로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반사회적 범죄"라며 "재산을 은닉하거나 사적으로 유용하는 악의적인 사업주나 상습적인 체불 사업주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임금체불 혐의가 상당함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 등 강제수사를 적극 실시하고, 소액이라도 고의적으로 체불한 사업주는 정식 기소해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건설업, 외국인 등 체불에 취약한 업종과 계층을 중심으로는 사전예고 없이 불시에 10월 말까지 전국적인 임금체불 근절 기획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성남=뉴시스] 김종택기자 = 수백억원대 임금 및 퇴직금을 체불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현철 위니아전자 대표가 지난 20일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3.09.20. [email protected]
정부의 이러한 의지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운영된 '체불예방 집중지도기간'(9월4일~27일) 중 지난 18일 건설 일용 근로자 22명의 임금 4000만원을 체불한 개인 전기 사업자가 구속된 데 이어 20일에는 박현철 위니아전자 대표이사가 구속됐다.
그러나 피해 근로자들이 밀린 임금을 온전히 돌려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업주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임금 지급 여력이 없다며 버티거나 사업장 폐업 신고 또는 개인파산 신청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피해 근로자에게 국가가 대신 임금을 지급하는 '대지급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주로부터 회수하는 비율은 20%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대지급금을 상환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 등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장 불시 감독과 악덕 사업주 강제 수사 등의 대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용부는 지난 5월 '상습체불 근절대책' 발표에서도 이 같은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일각에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임금체불이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로 돼 있는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장관은 지난 5월 발표 당시 "제재 방식과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현재 조건에서는 반의사불벌죄가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선을 그으며 "구조적인 문제는 좀 더 많은 실태조사 등을 통해 방안을 강구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다음날이자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6일 임금체불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겪어온 50대 택시기사가 분신을 시도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체불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는 고용부 역시 이 사태의 공범"이라며 "고용부는 지금이라도 택시 사업장을 전수조사해 법에서 명시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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