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4주년' 블랙홀 "지금이 가장 전성기"…반전의 헤비메탈 밴드
2년 안에 10집 발매 계획…"팀 마지막 정규 앨범"
[서울=뉴시스] 블랙홀. (사진 = 사운드트리 제공) 2023.11.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에게도 데뷔 34주년을 맞은 올해 여전히 그르렁거리는 헤비메탈 밴드 '블랙홀'이 있기 때문이다. 1985년 결성해 1989년 1집 '미라클'을 발매한 블랙홀은 국내 헤비메탈계 산 증인이다. 질주감 넘치는 사운드로 밴드 신을 호령해온 이들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들이 오는 19일 오후 5시 서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펼치는 데뷔 34주년 기념 콘서트는 이를 증명하는 자리다.
주상균(기타 겸 보컬), 이원재(기타), 이관욱(드럼), 김세호(베이스) 네 멤버를 실제로 만나면 그런데 이 맹렬한 음악을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편견이 깨진다.
일본만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국내 중장년 판이라고 할까. 만화 속 데스메탈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보컬 겸 기타를 맡은 네기시는 이 팀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요한 크라우저 II세'로 통한다. 사실 그러나 그는 감미로운 음악을 좋아하는 모범생이다.
세 멤버가 '알쓰'(알코올 쓰레기)인 블랙홀 역시 그렇다. 주상균·이관욱·김세호는 최근 냉면을 먹으러 가서 대차게 술 한 병을 시켰는데, 홀짝거리다 이를 다 비워내지 못했다. 이원재는 홀로 술을 마시는데, 얌전히 주도(酒道)를 지킨다.
무조건 밤새 술을 마시고 괴성만 노래로 승화할 것 같은, 헤비메탈 밴드에 대한 무지한 오해를 블랙홀이 바로 잡아준다. 최근 낙원동에서 만난 네 멤버는 포효하는 무대 위와 달리 조용조용 말했고, 새근새근 웃었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
-공연장을 찾는 골수 팬분들이 꽤 많으시죠.
"저희 유튜브 채널 블랙홀TV(구독자 약 2만명)을 통해 팬들이 꽤 모였어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실시간 방송을 일주일에 세 번 하니까 자주 뵈면서 커뮤니티가 생겼죠. 저희 팬들은 헤비메탈 팬이긴 한데 이제 헤비메탈 팬이라기보다는 블랙홀만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어요."(주상균)
-14년 만인 2019년 정규 9집 '에볼루션'을 내셨어요. 당시 2~3년 만에 10집을 내고 싶다고 말씀 하셨었습니다. 메탈리카도 7년 만에 새 앨범을 냈고,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는 18년 만에 정규를 냈잖아요. 노장 밴드들의 활약이 전 세계적으로 대단합니다.
[서울=뉴시스] 블랙홀. (사진 = 사운드트리 제공) 2023.11.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세호 씨는 비교적 뒤늦게 팀에 합류를 하셨잖아요. 외부에서 보는 거랑 내부에서 보는 거랑 무엇이 다르던가요?
"정말 레전드이고 워낙 존경하는 형님들이었으니까 상균 형님이 처음 연락을 주셨을 때 '꿈이야 생시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팀에 들어온 지 5년 가까이 됐는데 형님들의 따뜻한 면을 계속 보고 팀 활동도 재밌어요. 특히 합주를 할 때 되게 행복해요. 밴드 음악 중에서도 특히 메탈은 각자 의무를 확실히 해줘야 되거든요. 누가 하나 튀면 같이 할 수가 없어요."(김세호)
-그런데 요즘 밴드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뮤지션들도 많은 거 같아요. 밴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시대마다 새로운 흐름이 있고 새로운 변화가 있죠. 1인 뮤지션도 시대에 맞는 선택일 것 같아요. 사실 밴드의 형태도 기존 오케스트라, 풀밴드의 인원을 최소화한 거잖아요."(주상균)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합을 맞추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는 연주자들의 실제 연주를 서로 들으면서 보완하는 사운드에 목적을 두죠.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게 모아졌을 때가 최선의 상태라고 생각해요. 정확하게 받쳐주고 확실히 자기 것만 하면 되는 거죠."(이원재)
-오랜만에 내신 앨범인 9집을 낸 이후 활동을 돌아보시면 어때요?
"블랙홀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엔 현재 우리들의 삶과 과거의 역사적인 삶에 대해 많이 노래했어요. 그런데 9집은 '미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어 시점이 '미래로 간' 앨범이에요. 사운드 역시 미래적으로 구현하려고 했죠. 비록 미래는 추측밖에 하지 못하지만 저희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을 담은 거죠. 그래서 9집은 연주 스타일도 달랐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걸 다 풀어내자'가 아니라 '정말 간결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그런데 밝고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렇게 연주하려면 사실 엄청 힘들어요. 라이브에선 더 힘들죠. 이번 공연에 들려드리기 위해 엄청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주상균)
[서울=뉴시스] 블랙홀. (사진 = 사운드트리 제공) 2023.11.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전 일단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생활이 되게 항상 규칙적이에요. 연습 시간 외엔 거의 집에 있고 시간 나면 운동만 하죠. 무리하게 몸을 후퇴시키는 법이 없죠. 그래서 아직까지 체력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어요."(주상균)
"무협지 좋아하세요? 신체적인 체력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대신 고수들은 힘을 빼는 방법을 알잖아요. 저도 이제 조금씩 그걸 터득해 나가는 거 같아요. 평생 과격한 걸 할 수 없으니까 힘을 빼는 대신에 최대로 효과를 내는 방법을 좀 알아가고 있는 중이죠."(이관욱)
-밴드 멤버들은 음악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공유해야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리더니까 일단 뭘 하다 보면 독선적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항상 조심하는 편이에요. 작은 내용이라도 물어보고 이야기하면서 귀담아 들으려고 하죠. 그런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나 멤버들의 의향을 잘 살펴야 되죠."(주상균)
-작년에 '블랙홀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전국공연을 하신 것도 호응을 얻었습니다. 양산, 제천 등 다른 팀들은 투어를 잘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공연을 하셨더라고요.
"팬데믹 첫 해이던 2020년엔 완전 멈췄잖아요. 공연장도 인원 제한이 있었고요. 원정대는 그 때 생각해서 이후에 추진한 거예요. 비교적 방역에 탄력적인 지역의 팬들과 이 참에 연대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지역 팬들이 현지 공연장도 알아보고 하면서 기획자 역할도 했어요. 전문 공연 기획자들도 아닌데, 설비 같은 걸 최신으로 가져와서 도와줬어요. 지미집도 가져오고 드론도 띄우고 그래요. 하하. 그렇게 팬들이 공연에 더 욕심을 부렸고, 지역의 팬들이 마치 가족처럼 됐죠. 실제 저희 관객 중에 가족 단위도 많고요."(이원재)
-팬들은 가수 따라 간다고 하던데 팬들의 성향은 어떤가요? 나이대는 어떻게 형성이 돼 있나요?
[서울=뉴시스] 블랙홀. (사진 = 사운드트리 제공) 2023.11.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10집 작업 중이신 거죠? 이번에도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인가요. 이미 10집이 밴드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될 것이라고 예고를 하셨는데요.
"1~2년 안에는 내고 싶어요. 그런데 마침표의 의미는 아니에요. 챕터를 정리하는 느낌이죠. 예전부터 헤비메탈 밴드로서 10집까지 낼 수 있으면, 정말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헤비메탈 음악을 하기엔 현실이) 너무 힘드니까요. 그 이후는 일단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저희의 원래 계획대로만 하는 거죠. 근데 앨범을 내기 힘든 진짜 이유는 돈 문제가 아니에요. 매 앨범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스토리를 더 이상 완성하기 힘든 거죠. 그리고 헤비메탈은 홍보하기도 힘들어서 애써 만든 음반을 알리기도 어려워요. 사실 내고자 하면 내일도 당장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단순한 기념 음반이 아니잖아요. 저희에게도 응원해준 팬들에게도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음반을 내고 싶어요. 그래서 더 서사를 갖춰야죠."(주상균)
-헤비메탈 음악은 계속 될까요?
"헤비메탈이 갖고 있는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기조는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형태가 지금 같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해요. 이매진 드래건스처럼 얼터너티브하게 변할 수도 있죠. 그리고 젊은 친구들이 일렉트로닉이나 K팝이 지겨우면 이쪽으로도 올 수 있는 거죠."(이원재)
"제 아이들이 20대 남자 아이들인데 이제 신시사이저 소리가 나오면 무조건 안 듣더라고요. 예전 노래에 익숙해질 공간이 더 생기면, 헤비메탈이나 록 음악을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친구들에겐 새로운 소리잖아요."(주상균)
-다시 블랙홀의 시대가 올 수도 있겠네요. 아니 오겠습니다.
"근데 이제 그런 결과에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과정에서 만족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들이 저희가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 '헤비메탈 말고 다른 음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 '다른 팀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한국 음악계에 '블랙홀 같은 팀'은 사실 없어요."(이관욱)
"저희 시간은 우리 스스로 팬들이랑 함께 만들어온 거예요. 그 시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에서 '지상 최고의 헤비메탈 밴드 공연을 봤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판단하는 외적인 성공은 분명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저희 팀의 황금기는 지금이에요. 가장 행복한 시기도 지금이에요. 연주도 제일 잘하고요, 노래도 제일 잘해요. 그러니까 가장 전성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하."(주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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