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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어요" 떠나는 의대 제자들…스승은 못말린다, 왜?

등록 2024.03.20 09:32:46수정 2024.03.20 09: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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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장기화에 극도의 피로감 호소

필수의료 실질대책 부족 설득명분 없어

MZ세대 특성…교수 해외취업 가능성도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시기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2024.03.18. kmn@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사직서 제출 시기 논의를 위한 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2024.03.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 데 이어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의대교수들의 사직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이라는 강경 대응 카드를 고려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내달까지 지속되면 암·중증환자 피해가 우려되고 의대생 휴학과 전공의 부재로 전문의, 군의관, 공보의 배출에도 제동이 걸려 의료체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할 가능성이 큰 데도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조건없는 대화 대신 의대별 정원 배정 발표를 먼저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수들의 사직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빅5' 병원 중 한 곳인 삼성서울병원을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은 전날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의대 교수들이 모두 사직을 결의한 것이다. 앞서 서울대·연세대 의대 등 교수들은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오는 25일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절대적인 인력 부족에 따른 물리적 한계에 직면한 것도 의대교수들이 사직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교수들은 한 달 넘게 기존 외래진료 외에 전공의들이 서던 당직근무와 입원 환자, 응급·중환자까지 담당하며 이미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남은 교수들이 간신히 돌려 막으며 버티고 있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는 전날 페이스북에 '사직의 변'을 통해 "전공의·전임의가 사직한 후 혼자서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서 "급한 환자들을 우선 수술하고 나머지 환자는 다른 곳에 보내려고 해도 빅5 병원들의 그 많은 환자들이 다 어디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또 "폐암 환자들은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겨우 버텨오던 흉부외과는 남은 자들이 온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얼마간 버티다가 결국 문드러져 버릴 것이다. 이 땅의 가장 어려운 환자들을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 보느니 차라리 의업을 떠난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사직 움직임은 정부에 수 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수·지역의료 정책에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의대증원 발표 전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경우 "책상머리에서 만든 정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필수의료 패키지는 겉핥기식으로 진정성이 안 보인다"면서 "법 개정을 통해 의료 소비자(국민)에게 어느 정도 의무를 부여해 왜곡된 의료체계를 상당 부분 바로 잡을 수 있는데, 연일 몇 조 투입하겠다는 식의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선심성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의료 공급자 일변도 통제로 생색은 정부가 내고 그 부담은 국민에 떠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대증원 취지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운 '응급실 뺑뺑이'의 경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으려 하는 경증환자에게 해외처럼 본인 부담금을 올리거나, 중증도가 낮다면 2차병원 후송을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영국은 무상의료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응급실, 중환자실 환자를 일정 간격으로 재평가해 이런 식으로 병상을 약 15%를 비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의 응급·중환자 병상 수는 OECD보다 적지 않다. 응급 급성기 병상의 경우 오히려 2~3배 정도 많다"면서 "응급환자가 제때 입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경증 환자들이 이미 병상을 꽉 채우고 있어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평가해 중증도가 낮다고 판단되면 2차 병원으로 후송하고, 환자가 의사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되 이를 거부하면 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런 개선책 없이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에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든다면서 초보의사인 인턴을 2년간(기존 1년제) 활용하는 방안을 넣은 것도 논란거리다.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든다면서 전공의 과정에 입문한 인턴을 활용하는 것은 취지와 상충된다는 것이다.

한정우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과 교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드려면 결국 비용이 문제인데,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에 인턴 2년제를 끼워넣어 몸값이 가장 싼 인턴을 2년이나 착취하겠다고 한다"면서 "안 그래도 아픈 소청과를 두 번 아프게 하지 말라. 지금이라도 소아과를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긴 어린이병원 적자 보상책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가 적자를 본 것의 100%가 아닌 80%만 보상해 주기로 했다. 한 교수는 "애초에 진료 볼 때마다 적자를 보게 만든 것이 문제"라면서 "이제 제대로 된 진료환경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려 하는 MZ세대인 점도 교수들이 제자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사직서 제출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지게 된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허 교수는 "평생 의업에 몸 담아야 하는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정책의)영향을 받는다"면서 "의사 면허를 딴 후 대학병원에 남아 수련을 더 쌓아온 전공의들은 대부분 필수의료에 관심을 갖고 남았는데, 스스로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교수들이 "최후 해외 취업까지 염두하고 사직을 결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 교수는 "이번 사태로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면 인적자원이 많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면서 "지금과 이유는 다르지만 의대 교수 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1970년대 서울대 의대 졸업자 중 절반 가량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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