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00시간 돌봄이요? 더 힘든 건 장애에 대한 '편견'"[인터뷰]
뇌병변 1급 장애학생 11년째 돌보는 김무선씨
할당된 시간 넘기며 봉사…"그런 것 계산 안해"
"대한민국 선진국이라지만, 장애 인식은 낮아"
"건강히 태어난 건 행운…나누는 게 사명이야"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지난 19일 노원구 서울정민학교에서 활동지원사 김무선(가명)씨가 중증장애학생 보현이(가명)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04.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태성 수습 기자 = "보현이(가명)는 뇌병변 1급으로, 스무살이지만 생후 12개월에 불과한 인지능력을 갖고 있어요. 때론 침을 흘리기도, 소리를 지르기도 하죠. 그러면 주변에선 세균 덩어리 보듯 피하곤 해요. 장애인의 날이니, 장애인에 대한 복지니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편견이 먼저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요?"
20일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서울 노원구의 특수학교 서울정민학교 만난 장애인 활동지원사 김무선(가명, 70대)씨는 인터뷰 내내 "우리 보현이"라며 자신이 돌보고 있는 학생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수학교 고등과정 3학년에 재학 중인 보현이는 뇌병변 1급 복합장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 학생이다. 김씨는 11년째 보현이에게 '제2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등하교는 물론 식사, 목욕 등 모든 일상을 옆에서 돕고 있다.
김씨가 보현이를 도맡아 돌보게 된 건 2014년부터다. 관광호텔, 사업체 등을 운영했던 김씨는 평소 장애인과 복지시설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은퇴한 이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보현이 부모의 부탁으로 보현이를 전담하게 됐다.
"당시 보현이 부모가 보현이를 돌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돌봄 관련 자격증을 땄는데, 자격증이 있으니 나라에서 활동보조를 해준다고 해서 '활동지원사' 매칭도 그렇게 시작했죠"
장애인활동법을 근거로 하는 활동지원사는 교육과정 수료 등 일정 자격을 갖춰야 할 수 있다. 활동지원사는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급여를 받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는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지난 19일 노원구 서울정민학교에서 활동지원사 김무선(가명)씨가 중증장애학생 보현이(가명)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2024.04.20. [email protected]
김씨가 보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주 100시간, 한 달에 400시간 이상. 다른 활동지원사들이 보통 월 150~200시간 일하는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런 건 계산할 필요가 없다"며 "주말에는 보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 내내 함께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이 고되지는 않을까. 김씨는 고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보현이를 돌보는 게 즐거워 그런 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이 결코 쉬운 건 아니라고 했다.
"우리 보현이 같은 경우는 체중이 가벼운데, 50㎏이 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그런 아이들은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2명 이상이 달라붙어야 해요. 아이들이 손아귀 힘이 강해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히거나 다리가 전부 멍으로 가득하기도 해요"
중증장애학생 중 상당수는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상반신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힘이 집중되고, 곁에 있다가 맞거나 꼬집히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설명이다.
학생에게 밥을 먹이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일, 대소변을 처리하는 것도 모두 활동지원사의 몫이다.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인 식사조차 쉽지 않다. 한입씩 밥을 떠먹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먹던 것을 토해내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김씨는 보현이를 돌보는 것보다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견디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호소했다.
"우리 보현이가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백화점 같은 데를 가면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성질내는 분들도 있고, 세균 덩어리 보듯 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도 이런 일을 많이 당하다보니 항의도 못 하는데, 장애인에 대한 복지 이런 것보다도 사람들의 편견이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활동지원사 김무선(가명)씨가 지난 19일 노원구 서울정민학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4.20. [email protected]
김씨는 최근에 겪었던 씁쓸한 일화도 소개했다.
"2주 전에는 전철을 타고 가다가 제가 한눈 판 사이에 보현이가 모르는 아주머니를 손으로 붙잡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이 휙 쳐다보더니 '에이씨!' 이러곤 저 멀리 가더라고요. 마치 혐오스러운 물체를 본 표정이었어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그렇지 않아요."
지난 총선에서는 서울 지역의 한 후보가 특수학교를 짓기로 예정된 부지에 특목고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수학교=혐오시설'이라는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단순히 인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 학생들에 있어서는 삶의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웹툰 작가 주호민씨로부터 촉발된 '특수학급 녹음기' 논란으로 중증장애학생과 특수학교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나빠지진 않을까 우려도 표했다. 그는 "특수교사들은 대부분 헌신적으로 일을 한다"며 "하나의 특수한 사례를 갖고 '학교가 잘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김씨는 활동지원가를 대표해 우리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제게 10번을 물어봐도 똑같이 대답할 거예요. '편견을 갖지 말고 장애인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우리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행운이고 이를 나누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도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아직은 힘들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