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삼성전자, 제2라운드에선 승기 잡을까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삼성전자 고문)이 지난 1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개회사를 해 눈길을 끈다.
김 회장은 "한국 반도체가 모바일 시장 개화 이후 1, 2위를 달성했으나 AI 반도체가 본격화한 2023년 이후 엔비디아와 TSMC가 매출을 대폭 확대하며 미국과 대만이 승자로 떠올랐다"고 발언했다.
김 회장의 이 발언은 특히 한국 반도체 시장의 현주소일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처한 작금의 현실과도 묘한 대비를 이룬다. 김 회장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모바일 사업은 일찍 준비를 잘했지만, AI 반도체 사업은 미국과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과 2022년 매출 기준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지만, AI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으로 지난해 TSMC와 엔비디아, 인텔 등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이날 발언을 한 김 회장 본인이 다름 아니라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 DS사업부문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가 DS사업부문장 재직하던 당시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용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개발에 나섰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팀을 대폭 축소했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파운드리 등 다른 사업에 힘을 실어야 했기 때문에 당장 돈이 되지 않는 HBM 사업을 끌고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당시 HBM2(2세대)를 만들어보니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결국 팀을 거의 해체 수준으로 대대적으로 축소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과연 최선이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 회장에 이어 경계현 사장이 DS부문장을 맡았지만, 한번 잃어버린 HBM 주도권을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올해 다시 HBM 전담팀까지 만들었지만 아직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는 DS부문장을 또 다시 전영현 부회장으로 바꿨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론을 보여주는 사례는 한때 HBM 개발팀을 축소했던 오판에서 그치지 않는다.
2030년 세계 1위를 목표로 야심 차게 추진 중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마저 수 년째 답보 상태다. 여기에 스마트폰 사업마저 애플과 중국 업체들에 치여 곳곳에서 경고음이 켜지고 있다. 최근에는 노조가 파업까지 선언하는 등 노사 갈등이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HBM개발팀의 대대적 축소 결정 이후 2년간의 시간을 돌고 돌아 HBM 시장에서 다시 어떤 실적을 보이며 자존심을 회복할 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선점하지 못하면 추격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은 쉽지만, 삼성전자의 초격차 수성은 이제 두번 다시 미래 사업에 대한 오판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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