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트스트림' 폭파 전말은…WSJ "젤렌스키 명령 어긴 잘루즈니 지시"
처음 계획 승인한 젤렌스키, CIA 경고 탓 중단 지시
잘루즈니, 중단 불가 입장…"이미 주사위 던져졌다"
우크라, 해저 가스관 폭파로 獨과 관계 경색 가능성
[보른홀름=AP/뉴시스]2022년 9월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 해저 가스관 폭파가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던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우크라이나대사 지시로 이뤄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사진은 2022년 9월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에 잇따른 가스 유출 사고가 발생한 뒤 덴마크 보른홀름섬 해안에서 관찰된 가스 누출 모습. 2024.08.1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2022년 9월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 해저 가스관 폭파가 당시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던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우크라이나대사 지시로 이뤄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매체는 사건에 정통한 우크라이나 국방·안보 고위 관료 4명을 인용해 처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가스관 공격 작전을 승인했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 측 요청에 따라 작전 실행 중단을 명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작전을 강행한 것은 잘루즈니 대사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임무에 착수한 팀이 연락이 두절됐다. 추가 접촉이 작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다"며 "이는 어뢰와 같다. 적에게 발사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쿵' 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폭파 계획은 2022년 5월 러시아 자금줄을 끊겠다는 목표로 수립되기 시작했다. 작전에 필요한 자금 30만 달러(약 4억830만원)는 민간 사업가가 제공했고, 군은 최고의 특수전 요원을 선발해 '민관 협력' 작전을 구성했다.
모든 준비와 보고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구두로만 이뤄졌다. 작전도 극비리에 수행됐다. 작전 가담한 현역 군인의 소속 부대도 작전 수행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작전 사항은 계획을 미리 인지한 네덜란드 군사정보보안국(MIVD)을 통해 CIA를 거쳐 독일 연방정보국(BND)까지 퍼졌다.
[오뷔르겐=AP/뉴시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스위스 루체른 일대 오뷔르겐 뷔르겐슈톡 호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6.17.
작전 수행에 참여한 인물로는 지난해 11월 워싱턴포스트(WP)와 슈피겔이 지목한 로만 체르빈스키(48) 우크라이나군 대령이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에서 근무하며 수훈한 체르빈스키는 고위험 비밀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로 낙점됐다.
그는 6명으로 구성된 폭파팀의 운송과 지원을 감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파팀은 범선을 임대한 뒤 거짓 신원과 잠수 장비를 사용해 가스관에 폭발물을 설치해 노르트스트림1·2를 구성하는 파이프라인 4개 중 3개가 파열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자체 조사 결과 작전 인원 6명 중 한 명은 30대 여성으로 민간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사적으로 잠수 훈련을 받은 그는 폭파 작전 수행과 더불어 팀이 휴가를 보내는 듯한 모습으로 위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해저 가스관이 폭발한 뒤인 2022년 10월 MIVD, CIA, BND는 작전 수행 장비·경로를 비롯해 세부적 공격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공유했다.
그 뒤로 독일 경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이메일, 휴대전화, 위성 전화 통신, 작전대원 지문과 디옥시리보핵산(DNA) 표본 등 증거를 확보해 작전 내용 일부를 입증했다.
[키이우=AP/뉴시스]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러시아의 침공 1주년 행사에서 군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2023.05.22.
지난 6월 독일 연방 검찰은 우크라이나 다이빙 강사에게 해저 가스관 폭파에 연루된 혐의로 조용히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독일 측 수사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대사가 작전에 직접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
잘루즈니 대사는 작전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우크라이나군은 해외 임무를 수행할 권한이 없어 관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공격 배후를 미국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미국을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다. 독일에 주재한 러시아 고위 외교 관료도 독일 조사가 조작이라며 미국 배후설에 무게를 실었다.
독일 당국 조사 결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노르트스트림 폭파 사건을 계기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지원을 제공한 독일과 갈등을 빚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사에 정통한 독일 고위 관료는 "이 정도 규모 공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 방위 조항을 발동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면서 "우리가 막대한 무기와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국가가 독일 중요 기반 시설을 폭파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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