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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성소수자에 대한 정답 대신 태도…연극 '와이프'

등록 2020.08.03 1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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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서울=뉴시스] 연극 '와이프'. 2020.08.03.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와이프'. 2020.08.03.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 '와이프'는 타인의 고통에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든다.

'와이프'에서 가리키는 타인은 성소수자다. '보통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는 이들이 공부는커녕 모른 척하거나 외면하는데 급급한 대상이다.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애덤슨의 작품인 '와이프'는 관객이 이방인의 관점으로 성소수자들이 어떤 싸움을 벌여왔는지, 벌이고 있는지를 톺아보게 한다.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 새로운 맥락으로 계승된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인형, 결혼 후에는 남편의 인형으로 살던 순종적인 '노라'가 가정을 떠나는 내용.

'와이프'에서는 1959년, 1988년, 2020년, 2042년 시대별 에피소드마다 '인형의 집'이 연극 형식으로 전통적 또는 전위적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시대별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변화됐음을 증거한다.

가장 눈에 띄는 구조는 시대가 바뀌어도 성소수자의 계보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1959년 가부장적인 '로버트'와 살고 있는 '데이지'는 연극배우 '수잔나'와 사랑에 빠진 레즈비언이다.

데이지의 아들은 1988년 수퍼 게이로 살고 있는 '아이바'. 그런 아이바와 한때 사랑했던 '에릭'의 딸 '클레어'는 2020년 아이바를 찾아온다. 그리고 2042년 클레어의 딸인 의대생 '데이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극배우 '수잔나'를 찾아간다.

1959년 수잔나와 데이지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같은 이름의 이들은 거대한 이야기의 순환고리를 만든다. 1959년부터 존재한 탬버린에는 여러 시대의 인물들의 이름이 계속 적혀 오며, 일종의 성소수자의 족보가 된다.

1959년 데이지, 2020년 클레어, 2042년 데이지 등 1인3역을 열연하는 손지윤으로부터 그 계보는 대물림을 받는다.

[서울=뉴시스] 연극 '와이프'. 2020.08.03.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와이프'. 2020.08.03.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email protected]

사회는 진화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보라는 이름과 등가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1988년 자신의 벽장 속에서 갇혔던 게이 에릭은 2020년 무지갯빛을 세상에 드러내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1988년 과거 벽장 속에서 뛰쳐나와 있던 아이바는 2020년 오히려 먹구름을 담은 검은 빛 상처를 안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만 가고 있다.
 
이처럼 '와이프'는 성소수자의 순탄한 직선적 삶이 아닌, 이리저리 치이는 곡선의 삶을 통해 한 사람이 고귀한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투쟁과 고민을 동반하는가임을 깨닫게 한다.

로버트, 아이바 그리고 클레어의 연인인 보통 남자 '핀' 등 1인3역을 맡은 백석광이 "놀랍게도 평등, 평화의 상징으로도 읽히는 동성혼 안에서도 '와이프'가 정해져 있더라"라고 밝힌 것처럼, 아무리 평등해 보이는 커플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정해지는 위계, 권력의 문제도 짚는다.
 
'와이프'에서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정답'을 감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해야 마땅하지만, 변하지 않아도 변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정확함을 이야기하는 정치적이 아닌, 정확함을 찾기 위한 수고가 중요하다고 항변한다. '와이프'가 엄격한 윤리 선생이 아닌, 성숙한 멘토처럼 느껴지는 연극인 이유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플랫폼-연출가'를 통해 국내 초연했다. 지난달 30일부터 8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재연했는데,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지난해 2019년 배경이 올해 2020년으로 바뀌었고, 코로나19 시국을 반영해 이 에피소드에서 인물들은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오는 8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1인3역의 손지윤과 백석광을 비롯해 이주영, 오용, 정환, 우범진, 송광일, 김현 등 배우들이 모두 호연한다. '제5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거머쥔 것을 비롯 이 작품과 '그을린 사랑’으로 지난해와 올해 연극상을 모두 휩쓴 신유청이 이번에도 연출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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