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2 학생 학폭도 前경찰 앞에 세우나"…제외 논의 재개
학교폭력 조사 대신할 '전담 조사관' 도입 안에
교직단체 "법 고쳐 학교폭력 범위부터 줄여야"
엄벌주의 기조와 여론이 학부모 악성민원 유발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아님 종결 사례 더 많아
"징계 일변도, 비교육적…수사관 대면, 비윤리적"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학교폭력 사안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 역할강화 방안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2023.12.09. [email protected]
교직단체들은 부담이 생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치게 넓은 학교폭력의 법적 정의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공분이 크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은 훈육으로 풀 경미한 사안이 많다는 점도 이런 논의에 힘을 싣는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정보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돌림에 대해서는 2명 이상의 학생들이 지속적·반복적으로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공격을 가해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모든 행위라고 정의했다.
정부가 지난 7일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교사를 대신에 전직 경찰 등 전담조사관에 맡기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일 다수 교직단체에선 이런 상황에서는 과중한 업무 부담을 떠넘기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은 "현재는 '지우개를 빌려주지 않는다', '나를 자꾸 째려본다' 같은 사소한 다툼부터 성폭력, 집단폭행 같은 강력범죄 사건까지 모두 학교폭력으로 묶여 있다"며 "학교폭력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조사관의 업무가 과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학교폭력의 정의를 고쳐 그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하자고 촉구했다.
사회적으로 학교폭력은 응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외려 이런 시선이 교사의 부담을 더 키워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초등학생 간의 학교폭력의 경우에도 자녀가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한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교사들은 화해와 훈육보다 마치 사법기관이 된 것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조치에 불복해 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학부모도 많아지고, 교사를 찾아와 협박하거나 아동학대 혐의가 있다며 고소·고발하는 사례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 7월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의 경우에도 생전 학생들 간의 일명 '연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려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바 있다.
좋은교사운동은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학교가 교육 조직으로 존재하기보다 준사법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며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절차상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와 학교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전했다.
학교폭력 건수가 해마다 증가 추세이긴 하나 사안이 경미해 징계하지 않고 교육적 해결을 도모하는 '학교장 자체해결' 해당 건수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뉴시스] 7일 교육부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1학기부터 교사를 대신해 퇴직 수사관 등이 학교 안팎의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맡게 된다. 학교는 이를 검토해 종결하거나 교육지원청에 생길 전담기구로 넘기게 된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은 사소한 장난이나 오해가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일도 많다 보니 불필요하게 부담스러운 학교폭력 업무만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 전체 학교폭력 심의 2만3603건 중 12.9%인 3037건이 '학교폭력 아님' 결론을 받았다.
그런데 이를 초등학교 1~2학년이 관련된 사안으로 범위를 좁히면, 지난해 1137건 중 24.7%인 281건에 대해 '학교폭력 아님'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김 의원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폭은 그 양상이 상대적으로 조정과 화해가 가능한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에도 전국 교육감들이 초등 저학년 간의 다툼은 학교폭력으로 보지 말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은 지난 3월 협의회 명의 성명을 내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교폭력에 대해 "처벌 중심의 조치보다는 학교장 재량에 의한 화해·조정, 선도 조치, 관계 회복 프로그램 운영 등의 방향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교사를 대신해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맡을 전담조사관이 전직 경찰이라는 점도 일각에서 우려를 산다.
좋은교사운동은 "교육기관인 학교가 초등 저학년 학생의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도 징계로 일관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며 "전직 수사관이 학교폭력을 조사한다면 초등 저학년 학생도 수사관 앞에 세워야 하는데 윤리적으로도 온당하지 않다"고 했다.
교육부도 이런 논의에 대해 여지를 열어둔 모양새라 후속 논의가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7일 '전담 조사관' 도입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은 교사들이 교육적 해결을 하는 부분이 반드시 고려돼야 하고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지원관도 "초등학교 저학년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적 해결을 요구하자는 교육감들의 의견이 있다"며 "계속 그 부분은 반영을 해서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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