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폭행→"만취" 거짓신고→끝내 사망…살인죄일까
다투던 여자친구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
유족 "살인이다"…경찰, 상해치사에 무게
법조계 "엄한 처벌 필요"…의견은 엇갈려
[서울=뉴시스] 지난 7월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말다툼을 벌인 남녀 커플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 남성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여성이 쫓아가 뒷머리를 때렸고 남성은 여성을 세게 밀치는 등 폭행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은 병원 이송 후 약 3주 뒤에 사망했다. 2021.09.10. (사진=SBS 궁금한이야기Y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피해자 유족은 살인죄라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현재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인 대신 상해치사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법조계는 여론을 감안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살인죄와 상해치사 혐의 중 어떤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1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 사건을 수사 중이다. A씨는 지난 7월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의 여자친구 B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B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 범행 이후 A씨는 119에 "B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 넘어지다가 다쳤다"라는 취지의 거짓 신고를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B씨는 약 3주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결국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사망 이후 유족과 남자친구 A씨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A씨에게 어떤 혐의가 적용돼야 할지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유족 측은 A씨가 B씨를 죽일 의도로 폭행한 만큼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A씨는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A씨에게 적용될 혐의 결정에는 살인의 고의성 인정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의성이 인정돼 살인죄가 적용될 경우 처벌 수위는 훨씬 높아지게 된다. 꼭 살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어도 자신의 행위로 상대방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과 A씨가 범행 이후 직접 신고한 점 등을 이유로 살인 의도까지는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사건 당일 CCTV 영상에는 B씨와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보이는 A씨가 범행 전 현장을 두 차례 벗어나려고 한 정황이 담겼다. 지난 7월25일 새벽 2시40분께 A씨는 B씨의 오피스텔을 빠져나왔고, 이후 맨발로 쫓아 나온 B씨와 언쟁을 벌이는 모습이 찍혔다.
B씨는 A씨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쫓아가 손으로 뒷머리를 때리면서 길을 막았고, 이에 A씨는 B씨를 벽에 강하게 밀쳐 쓰러뜨렸다. 이후 A씨는 다시 자리를 떴지만 B씨는 다시 쫓아가 A씨의 머리를 한 번 더 때렸고, 흥분한 A씨는 B씨를 다시 쓰러뜨린 뒤 폭행했다. 쓰러진 B씨를 건물 안으로 옮긴 A씨는 이후 119에 신고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7월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말다툼을 벌인 남녀 커플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 남성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여성이 쫓아가 뒷머리를 때렸고 남성은 여성을 세게 밀치는 등 폭행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여성은 병원 이송 후 약 3주 뒤에 사망했다. 2021.09.10. (사진=SBS 궁금한이야기Y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대표변호사는 "둘이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로 보이는 만큼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위가)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법리적으로는 상해치사에 더 가깝다. 만약 사람을 죽였다고 다 살인이면 상해치사 혐의는 있을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하 변호사는 "유족은 A씨가 처음부터 B씨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해 살인죄를 주장하는 것 같은데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A씨가) 자리를 뜨려고 하거나 신고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살인죄보다 상해치사가 적절하다. 상해치사로도 더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폭행의 모든 상황을 본 게 아니라 기사를 통해 봐서 어려운 문제이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죽이려고 했다는 의도는 가해자만 알 수 있는데 (공개된) 영상에서는 의식을 잃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모습 등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쓰러져 의식을 잃은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될 수 있다"며 "A씨가 범행 후 119에 신고한 점 등은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하고 상해치사 혐의로 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일부 변호사들도 있었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A씨는 싸우다가 사망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고의가 있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엘리베이터에서 B씨를 옮기는 모습을 보면 이미 사망했는지 사망 전인지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벽으로 세게 미는 등 첫 번째 폭행은 단순 화풀이로 보이는 만큼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이후 일어난 2차 폭행 및 뒤늦은 신고 등 상황을 보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A씨는 B씨가 이미 죽었거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구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는 "죽일 의도로 때린 사실이 인정되면 살인죄로 기소 가능한데 데이트폭력은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미필적 고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며 "사람들이 데이트폭력에 너무 관대한데 경찰에서도 상대방을 제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폭행이라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등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B씨가 A씨를 먼저 때린 것은 상관 없는 문제"라며 "아동학대처럼 데이트폭력도 서로 간의 힘의 균형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해자는 부인하겠지만 수단이나 정도, 시간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가 폭행 이후 직접 119에 신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정폭력에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후에도 112에 자수하거나 119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람을 때린 뒤 신고하는 것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신고를 할 거였으면 그 정도로 때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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