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희귀병 치료기술 '있으나마나'…무용지물된 이유는?
선천망막질환 유전자치료제 원천기술 3년전 확보
이르면 올해 임상시험 진행 계획했지만 진행 못해
막대한 임상비·까다로운 규제·쥐꼬리 예산 걸림돌
"최근 4년간 허가 국산 유전자치료제 한개도 없어"
[서울=뉴시스]국내 연구진이 소아 실명의 주원인인 선천망막질환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유전자 교정 기술)을 3년 전 확보했지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비용과 까다로운 규제, 턱없이 부족한 예산 등에 가로 막혀 임상 시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국내 희귀난치성 안질환 환아. (사진=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제공) 2024.09.23. [email protected].
#. 이모(6)군은 망막의 빛 감지 세포가 퇴화되면서 시력을 상실하게 되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망막색소변성증의 원인 유전자는 SPATA7로, 유전자 치료 외에 치료법이 없다. 이군은 보도 블럭을 보지 못해 걸려 넘어지고 횡단보도 앞 돌기둥에 부딪치곤 한다. 공놀이를 좋아하지만 바닥에서 공을 찾지 못하고,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항상 상처투성이인 이군은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
국내 소아 희귀난치성 안과질환 환자들의 실제 사례다. 국내 연구진이 소아 실명의 주원인인 선천망막질환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유전자 교정 기술)을 3년 전 확보했지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비용과 까다로운 규제, 턱없이 부족한 예산 등에 가로 막혀 임상 시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김정훈 서울대병원 소아안과 교수팀은 2021년 동물 실험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4세대 프라임 기술(DNA 이중가닥 중 한가닥을 잘라내 손상된 DNA를 대체할 다른 DNA로 변환하는 기술)'로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선천망막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내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연구팀은 유전자 치료제에 활용되는 체내 유전자 교정 약물 전달체인 아데노부속바이러스(AVV)를 준비해 이르면 올해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2년 후 환아에게 투여한다는 목표를 잡았지만 아직 임상 시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훈 교수는 "선천성 망막질환을 근복적으로 해결할 차세대 유전자 치료 기술인 '프라임 유전자 교정 기술 및 세포 치료 기술'을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해 동물 실험을 통해 효과성을 확인했다"면서 "하지만 인체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국가의 세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천성 망막질환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거나 합병증이 발생해 시력이 감퇴하고, 지속적인 수술 등으로 인해 첨단기술이 접목된 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어 조속한 유전자·세포 치료가 요구된다. 유일한 희망은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세포 치료제다.
국내 연구진이 선천성 망막질환 치료제 임상 시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막대한 임상 비용이 꼽힌다.
체내에 유전자 교정 약물과 유전자 가위를 돌연변이가 있는 유전자 서열까지 운송하려면 유전자 전달체인 '바이러스 벡터'가 필요하다. 바이러스 벡터를 개발하려면 재료비만 최소 10억 원에서 15억 원이 필요하다. 개발비는 미국의 인체용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시설을 갖춘 위탁개발생산(CDMO)업체가 '부르는 게 값'이다. 국내에는 임상 시험에 필요한 인체용 바이러스벡터를 생산할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이 없어서다. 개발비는 25억 원에서 39억 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주혁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회장은 "국내 개별 기업이 CDMO에 뛰어들고 있지만 인체용 바이러스 벡터를 만들만한 기술과 생산 시설을 갖춘 곳은 없고, 세포를 배양하는 GMP시설이 없다"면서 "대안으로 바이러스 벡터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대학에서 책임질 수 있도록 유전자세포치료센터를 설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선천성 망막질환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되거나 합병증이 발생해 시력이 감퇴하고, 지속적인 수술 등으로 인해 첨단기술이 접목된 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어 조속한 유전자·세포 치료가 요구된다. 유일한 희망은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세포 치료제다. 사진은 희귀난치성 안질환 환아. (사진=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제공) 2024.09.23. [email protected].
김 교수는 "환자 맞춤형 유전자 전달체가 개발되면 동물실험을 다시 진행해 그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면서 "식약처로부터 임상 시험을 승인 받기까지 까다로운 절차와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세포 치료제 임상 시험에 속도를 내려면 치료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식약처의 관련 규제와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약처의 심사 방식이 법률과 정책에서 허용되는 것 이외의 것은 모두 허용하지 않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보니 유전자 세포·치료제 임상 시험 진행이 더디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심사 체크리스트에 누락된 항목이 발생되면 임상 시험이 1년 이상 중단되다 보니 심사 기간이 평균 2년 정도 소요돼 임상 시험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처럼 법률과 정책에서 금지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심사 방식으로 바꾸거나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예산 지원을 늘려 심사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임상시험 인허가의 어려움은 객관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김 교수는 "최근 4년간 허가된 국산 유전자 치료제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FDA가 2020년 이후 허가한 유전자·세포 치료제는 20개다. 같은 기간 유럽 의약품청(EMA)과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는 각각 11개와 12개를 허가했다.
선천성 망막질환 치료제 임상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걸림돌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지목된다. 김 교수팀은 지난 6월 '글로벌 톱 유전자·세포치료 전문연구단'으로 선정됐지만 배정받은 예산은 8억여 원으로, 바이러스 벡터 재료비(최소 10~15억 원)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첨단 유전자·세포 치료 관련 예산은 복지부, 과기부 등 각 부처에 흩어져 있다 보니 연구자 주도 임상 시험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협회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임상 시험 과정에서 기초과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서울대병원 등에 임상 시험 유전자세포치료 사업단을 2천 억 규모로 꾸려 제한적으로 임상 시험을 하든지 컨트롤타워인 유전자세포치료센터를 만들기 위해 입법, 사업, 예산 등에 대해 논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연내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예산, 입법, 사업 등이 담긴 법안 발의를 논의 중이다.
이 회장은 "소아 희귀난치성 안질환 아이들은 유전자·세포 치료제만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초격차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해 아직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면서 "입법, 사업, 예산 등에 대한 재검토와 유관기관과 정부, 국회 간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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