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허진호 감독 "자식 문제엔 삶의 기준도 무너질 수밖에요"
영화 '보통의 가족'으로 5년만에 돌아와
"인간 양면적 모습 드러나는 순간 그려"
헤르만 코흐 소설 '더 디너' 원작 "부담도"
"한국적 요소 넣고 유머도 넣어 새롭게"
"다시 한 번 멜로영화? 만들지도 모르죠"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있잖아요. 그 기준이 무너지게 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허진호(61) 감독의 새 영화 '보통의 가족'(10월16일 공개)에는 결론이나 답이 없다. 대신 물음과 의문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같은 것들이다. 너무 다른 두 형제가 있다. 변호사인 형의 목표는 돈인 것 같다.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면 누구라도 변호할 수 있다. 의사인 동생은 명예가 중요한 사람으로 보인다. 돈이 없는 환자라도 우선 치료를 해줘야 한다는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형제의 아이들이 어느 날 밤 노숙자를 무차별 폭행해 큰 부상을 입혔고 이 남자는 사경을 헤맨다. 경찰은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제는 이제 결심해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건을 덮을 것인가, 아니면 자수시켜 참회하게 할 것인가. 영화 공개를 앞두고 허 감독을 만났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누구나 신념 혹은 가치관 같은 게 있죠. 도덕 기준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이 자식 문제와 얽히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겁니다. 제가 아버지가 돼 보니까 그걸 알겠더라고요. 이 때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거죠. 인간은 복잡한 존재잖아요."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가 2009년 내놓은 소설 '더 디너'가 원작이다. 두 형제 가족 사이에 형성된 높은 긴장감, 이를 통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 워낙 인상적인 작품이어서 2015년엔 이탈리아, 2017년엔 미국에서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허 감독은 이 작품을 교육·학교폭력 등 한국적 요소를 첨가해 풀어냈다. 그는 "원작이 있고, 이미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든다는 데 부담이 있었지만, 이전까지 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연출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리적 딜레마와 자식 문제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양면적 모습들. 이런 건 제가 이전부터 관심 있는 주제들이었습니다. 원작은 좀 더 결이 다양합니다. 입양이 있고, 인종 문제, 정신병적 요소들도 있죠. 우리 영화는 좀 더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초중반부에 유머를 넣은 게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과 차이점이죠. 제가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출연진이다. 설경구가 형 재완을, 장동건이 동생 재규를 연기했다. 재완의 아내 지수는 수현이, 재규의 아내 연경은 김희애가 맡았다. 2012년 '위험한 관계'를 함께한 장동건을 제외하면 허 감독과 처음 호흡하는 배우들이다. 네 배우가 한 자리에 모이는 세 차례 식사 장면은 '보통의 가족'의 백미. 묘한 우월감과 열패감, 뒤섞여 있는 진심과 거짓, 애정과 증오가 얽히고 설키며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기괴한 웃음까지 끌어낸다. 네 배우의 호연과 허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배우가 워낙에 성실했습니다. 밥 먹는 장면이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쉬운 장면이 결코 아니었어요. 힘든 과정이었는데 배우들이 정말 잘해줬습니다."
허 감독 필모그래피는 2016년 '덕혜옹주' 이후 분기점을 맞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등으로 멜로라는 장르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그는 이제 다양한 장르에서 이전에 보여준 적 없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허 감독의 오랜 팬들은 그가 다시 한 번 멜로 영화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허 감독은 "언제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작이어야 하냐"며 "감독은 언제나 가장 최근 작품이 대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거의 30년이 된 영화를 아직도 기억해주니까 당연히 감사합니다. 최근에 열린 런던한국영화제에선 '보통의 가족'이 개막작이었꼬 '봄날은 간다'도 틀었어요. 제 영화이지만 새롭더라고요. 또 모르죠. 어떤 새로운 멜로영화를 하게 될지도요. 하지만 제 영화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모든 영화들이 감정을 따라가는 작품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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