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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는 의결권 자문사 입김…'평가 기준' 깜깜이

등록 2025.01.08 06:00:00수정 2025.01.08 11: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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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전문성 담보 장치 부족

규제·감독 부재 영역이지만…금융당국 "규제 어렵다"

"기관투자자들,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 필요"

강해지는 의결권 자문사 입김…'평가 기준' 깜깜이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자문사들의 입김이 세지고 있지만 자문 내용의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일환 중 하나로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고 있는데, 자칫 기관·소액주주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객관성·전문성이 우리나라 주주권 행사 수준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산하 의결권 자문 기구인 '지배구조자문위원회'는 2020년 LG화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1개의 의안 분석 보고서를 냈다.

21개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72개 기업 측 안건 중 위원회는 71개에서 찬성 손을 들어줬다. 주주제안 안건 23건에 대해선 태광산업의 액면분할 안건 1개를 제외하곤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

위원회는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부터 가장 최근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합병까지, 기업의 주요 지배구조 개편 이슈에서도 의안 분석을 통해 목소리를 내왔다. 지배구조자문위원회는 상장협과 독립된 부설 기구지만, 상장사들이 주주총회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19년 설립됐다. 주주 제안이 있는 회사, 기관투자자의 반대가 예상되는 회사의 이슈가 되는 안건을 우선 대상으로 주총 의안을 분석하고 찬반 의견과 의결권 행사에 대한 참고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의결권 자문사'라는 이름을 달고 의견을 낼 경우 투자자들이 '중립적·객관적' 정보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이를 담보할 제도적 장치는 없다는 것이다. 의결권 자문사란 수백개 투자 대상 기업의 주총 의안을 모두 분석할 수 없는 기관 투자자 고객을 대상으로 의안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말한다.

특히 상장협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어 기업 측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지배구조자문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회원사인 기업 입장을 고려 안할 순 없지만,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심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등과 유사한 분석 기준을 갖고 있으며 반대쪽 의견도 낼 수 있는 위원회 구성"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7~8명의 위원회 구성은 비공개다.

)국내 의결권 자문·주총 의안 분석 시장은 크게 3사(한국거래소 산하 한국ESG기준원·대신그룹 산하 한국ESG연구소·서스틴베스트) 구도로 형성돼 있다. 특별한 승인이나 등록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 '의결권 자문사'란 이름의 회사·기구는 주주 행동주의 경향이 강해진 최근 몇년 새 비영리 기관까지 포함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2022년 아주기업경영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비영리 연구기관 경제개혁연구소(ERRI)도 산하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를 두고 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의 입지는 아직 국내에서 걸음마 단계지만, 주총 시장에서 막강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해외 의결권 자문사의 권위로 인해 투자자들도 이들에게 수준 높은 공정성과 객관성, 전문성을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 이슈가 되는 주총에서 글로벌 자문사 ISS나 글래스루이스뿐 아니라 국내 의결권 자문사 3사와 상장협의 지배구조자문위, 각종 포럼 등의 의안 분석 내용이 하나의 전문성 있는 목소리로 다뤄지는 이유다.

해외에서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은 막강하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을 포함해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자들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글래스루이스 등의 의견을 높은 비중으로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본격화, 주주 행동주의의 확산, 소액주주 증가 등에 힘입어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의결권 자문사와 관련한 별도 규제나 감독은 사실상 없다. 자본시장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며, 승인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규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2018년 발간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보고서에서 송홍선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게 되면 우리나라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 자문회사에 위탁하는 방식을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의결권 자문회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전문성이 우리나라 주주권 행사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의결권 자문회사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미국처럼 자문업자로 등록을 유도하되, 자문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의결권 자문회사에 대해선 자문업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며 "비영리로 의결권 자문서비스를 하려는 회사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3월 주총 이후 여름까지도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자율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하고 업계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에 전면 중단됐다.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당국과 업계는 당장 규제를 적용하는 것보다, 기관투자자들이 자문사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논의하는 게 건설적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가이던스를 만드는 쪽으로 접근하기보단,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을 건지에 대한 원칙을 고민해야 한다"며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나 수탁자의 선관주의 의무, 수탁자 책임 등 대원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승인제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의결권 자문사를 세울 순 있지만 모두가 실제로 영향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두세곳을 빼고는 상장사를 50% 이상을 커버하지 못하고 있거나 기관투자자 고객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투자자들 내부적으로 인하우스 의견과 자문사 의견이 다를 경우 어떻게 의견을 반영하는지 내부 프로세스가 있고 회의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국내 의결권 행사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이고 투명한 의결권 행사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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