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치의 사법화에 시달리는 판사, '공정한 재판' 보루돼야
![[기자수첩]정치의 사법화에 시달리는 판사, '공정한 재판' 보루돼야](https://img1.newsis.com/2025/02/24/NISI20250224_0001777019_web.jpg?rnd=20250224140430)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중증 환자를 살리기 위해 주인공인 천재 외과의사 백강혁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다. 대범해 보이는 그의 판단력에는 이유가 있다. 6년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장을 누비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실탄이 오가는 아수라장에서 별의별 환자들을 다 겪어본 게 위급한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병원장은 환자 고작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비싼 헬기를 띄우는 백강혁이 눈엣가시다. 중증외상센터가 한 달에 4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다른 교수들 앞에서 타박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백강혁은 큰소리치는 병원장과 기조실장 앞에서도 당당하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이 그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외상외과는 사명감 있는 또라이들만 버틸 수 있다"는 유머러스한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중증외상센터 병원장처럼 최근 사회 경향을 보면 법관에게 '눈치 좀 보라'는 식의 공격이 많다. 사법부를 독립적인 기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판사의 신상을 털거나 인신공격하기 일쑤다.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당 사람을 두둔하기 위해 판결을 문제 삼으며 사법불신을 심화시키고 법관 탓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어떤 판단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간과한 채 유·무죄만 조명하고 '전라도 판사', '정권에 붙은 판사' 등 근거 없는 말을 내뱉는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중국인이라는 등 루머까지 생산한다.
법원이 이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증거가 많거나 범죄혐의점이 뚜렷한 사건이 아닌 경우 법관의 해석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이때 충분하거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있다. 결론을 정해 놓고 판결문을 써 내려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증거능력을 배제하거나 공소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감안해도 법관의 말이 설득되지 않을 때가 있다.
설득되는 판결이려면 '법관의 양심'이 판결문에 녹아들어야 한다. 여기서의 양심은 자신의 신조나 윤리성, 이데올로기 등 거창하고 철학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독립성을 유지한 채 오로지 법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103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결문에서 법관의 양심이 녹아있을 때 그 판결은 최상의 공공성을 띠게 되고 대부분 그 판결에 순응하게 된다. 극소수의 지적이 있을지라도 법관은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다.
최근 법원과 대법원, 헌법재판소에 굵직한 사건들이 쌓여 있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12·3 비상계엄 사태 형사재판(1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 항소심(2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 혐의 상고심(3심) 등이다. 법관도 거물급 정재계 인사를 심판하는 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외압을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강혁이 온갖 타박에도 사람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던 것처럼, 법관도 좌고우면 하지 않고 판결해야 한다.
한 당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한 판사가 구형공판에서 "이 사건이 생긴 대로 판결하겠다. 다른 것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을 하겠다고 공언하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다짐해보는 심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지고 사법의 정치화가 심해질수록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사명감 있는 또라이가 중증외상센터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처럼, 양심에 따른 판결로 법원을 살아있게 만드는 법관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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