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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개편안…중소기업 노동자들 "근로시간만 늘어날 것"[현장]

등록 2023.03.08 06:30:00수정 2023.03.13 09: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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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주 69시간 개편안…휴가로 휴식권 보장

"직장이 대기업과 은행 밖에 없다고 생각하나"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지난해 5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2.05.06.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지난해 5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2.05.0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중소기업 노동자한테 몰아서 일하라는 것은 다치라는 겁니다. 사장은 '몰아치기'가 가능해지니까 납기일을 줄일 것이고 저희만 기계처럼 일하다가 죽어나겠죠."

정부가 주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중소기업 현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는 대신 장기휴가 등을 통해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계획이지만, 규모가 영세한 소규모 기업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휴식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7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중소기업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과 관련해 "일은 늘어나고 정당한 보상은 받지 못할 것 같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주 52시간'에 묶여 있던 근로시간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안을 지난 6일 발표했다.

개편안은 주 단위로 고정되어 있던 연장근로 시간 단위를 노사 합의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주 12시간 단위로 제한되던 연장 근로시간을 월 52시간(12시간×4.345주) 등 총량으로 계산해 특정 주에 집중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휴식권을 고려해 퇴근 후 다음 일하는 날까지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기로 했다. 휴게 시간을 빼고 주 6일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근로시간은 주 69시간이 된다. 정부는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주 64시간을 상한으로 설정했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03.06.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03.06. [email protected]


그러나 중소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개편안으로 근무 강도가 심화돼 건강권을 위협받을 것이란 걱정이 우선 나온다. 중소기업 현장직의 경우 현재도 노동강도가 높은 편인데, 이른바 '몰아치기'가 이뤄질 경우 근로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경상북도 의성의 한 중소기업에서 철도 시공 현장 안전 관리를 하는 안모(30)씨는 이번 개편안을 두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무직에는 가능한 제도일지 몰라도, 현장에서 15~16시간씩 서서 일하는 중소기업에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노동자한테 몰아서 일하라는 것은 다치라는 것이다. 사장은 '몰아치기'가 가능해지니까 납기일을 앞당길 것이고, 저희만 기계처럼 일하다가 죽어날 것이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소형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봉모(29)씨도 "한 달 내내 새벽까지 연장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졌다"며 "주 52시간제가 자리 잡으면서 '몰아치기' 문화가 사라졌는데 다시 그런 근로 환경에 놓일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연장·휴일·야간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쓸 수 있게 하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에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봉씨는 "회사에 비슷한 제도가 있어서 이용하려고 추가 근무를 50시간 넘게 했는데 실제 휴가는 이틀밖에 못 받았던 적이 있다"며 "회사의 꼼수를 관리하지 않고 보상을 휴가로 제공하면 정당한 보상을 못 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도 "저희 같은 중소기업에는 휴가를 보장해준다는 개념이 없다"며 "일이 많을 때는 갑자기 나와라 했다가 일이 없으면 임금을 아끼기 위해서 쉬라고 하는 회사에 어떻게 휴가를 보내달라고 하겠느냐"며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업무 대체자가 많지 않은 중소기업은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휴식권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들이 많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개편안이 발표된 직후 "연말께 연차를 소진하라는 공지가 많이 뜨는데, 막상 (자리에) 가보면 연차를 썼다는 사람들이 회사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다", "직장이 대기업이랑 은행 같은 곳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69시간 일 시키는 곳에서 퍽 한 달 휴가를 쓰게 해주겠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노동계도 개편안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방안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은 전날 "사용자가 주도하고 결정하는 노동시간 선택권, 연속·집중 노동으로 무너지는 건강권, 근로기준법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단기 쪼개기 노동계약이 주류인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인 휴식권"이라고 했다.

한국노총 역시"초장시간 압축노동을 조장하는 법"이라며 "노동자의 선택권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장시간 집중노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휴식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개편방안"이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전날 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다만 법제화를 위해선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정부는 오는 4월17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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