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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은 기본권 침해"…아시아 첫 사례

등록 2024.08.29 18:45:58수정 2024.08.29 18: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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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판단…제기 후 4년만

일부 인용 판단…청구단체 "아쉽지만 의미있는 진전"

감축목표 위헌 확인한 아시아 첫 사례…대만·일본 영향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등 시민단체의 기후 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4.08.29.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등 시민단체의 기후 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4.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정부가 수립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위헌성을 확인한 아시아 첫 사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관해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등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은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 2020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후 4년 만에 나왔다.

2021년에는 시민 123명이 탄소중립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목표가 위헌이라며 시민기후소송을 냈다.

2022년엔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영유아 62명이 아기기후소송을 냈다. 당시 20주 차 태아를 비롯해 어린이가 헌법소원을 청구해 주목을 받았다. 2023년에는 시민 51명이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이 위헌성을 가려 달라며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등을 제기했다.

헌재는 4건의 헌법소원을 병합해 심리에 나섰다. 올해 4월과 5월 공개 변론을 통해 청구인 측과 정부 측의 입장을 청취했다.

청구인 측은 2030년까지 2018년 배출한 온실가스 40%를 줄이기로 법률로 정한 녹색성장 기본법, 탄소중립 기본법 등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제시한 40% 감축 목표가 낮아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다.

반면 정부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의 목표와 비슷한 수준인 40% 감축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맞섰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주장을 일부만 인용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기로 한 현재 정부의 목표에 대해서 합헌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단체들은 이번 결정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의미있는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헌재의 선고 이후 성명을 통해 "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오늘 판결은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살아 갈 우리의 삶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기후위기를 넘어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럽, 미국 등에서 기후위기 관련 소송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 아시아에선 첫 사례였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전 세계가 주목한 이유다.

네덜란드에선 2013년 환경단체 위르헨다 재단이 정부의 기후 변화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기후소송의 시초가 됐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8%로 신설했다.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어린이·청소년 16명이 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주 정부가 화석연료 채굴 사업 허가 과정에서 기후변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다. 

이밖에 프랑스,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 대응과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결정은 아시아 국가의 기후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대만에서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최근 일본에선 청년들이 화력발전회사를 상대로 '청년기후소송'을 시작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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