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식량지원' 선회한 文…북미 대화 물꼬 '플랜B'
인도적 지원, 대화 중재 '지렛대'…트럼프, 한미 회담서 먼저 언급
개성공단·금강산 재개 좌절 겪은 文…美 우호적 카드로 새 돌파구
【워싱턴(미국)=뉴시스】전진환 기자 =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8.05.23. [email protected]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전술유도무기와 장사정포를 동원한 북한의 저강도 무력시위 속에 대화 촉구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고 대화 테이블 복귀 명분을 식량 지원 방안에서 찾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한미 정상통화에서 최근 유엔세계식량계획(WFP)·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한 식량 실태 보고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WFP와 FAO는 3월29일부터 4월12일까지 방북 조사를 통해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490만t으로 북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000만여명 가량이 식량 부족 상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59만t을 수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식량 지원 문제는 무 자르듯 누가 먼저 이야기했다기보다는 (전반적인) 사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원 방안에 대해 최종 결정하는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대북식량 지원의 아이디어는 지난 4·11 한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제시했었다.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 방안의 일환으로 금강산 및 개성공단 재개 등이 거론되자 선을 그으며 언급한 것이 인도적 차원에서의 식량 지원이었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고 있다. 2019.05.07. (사진=청와대 제공)[email protected]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단독 정상회담 모두 발언 직후 이어진 10분 간의 질의응답 때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부분적으로 허용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몇몇의 인도적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나는 솔직히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5일(현지시간) ABC방송 '디스위크'에 출연해 WFP 보고서를 언급하며 "인도적 지원을 위해 (제재 해제가)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협상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 식량 지원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은 당초 자신의 구상이었던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방안이 대북 제재를 유지하려는 미국에 의해 막히자, 추가 설득이 필요없는 대북 식량 지원을 '플랜B'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의 교착상태가 장기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량 지원을 계기로 중재 역할을 시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한미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식량 지원 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었다"면서 "이번 북한의 발사체 국면에서 대화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두 정상이 다시 논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17년 9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에서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과 WFP에 남북협력기금 800만달러를 공여하기로 의결했지만 그해 11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자 미국의 반대로 집행이 무산됐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남북 간 직접 지원이 아닌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 방식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아직 식량 지원의 규모·형식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까지는 오가지 않았다"면서 "이제 막 논의 시작 단계로 검토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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