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대 英총리된 '더벅머리' 존슨 누구?…브렉시트 강경파
기자, 하원의원, 외무장관 거쳐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
【서울=뉴시스】양소리 기자 = 이변은 없었다. 보리스 존슨(55) 전 외무장관이 예상대로 영국 집권 보수당의 대표이자 77대 총리로 선출됐다. 지난해 테리사 메이 총리에 맞서 '강경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외치며 내각을 떠났던 존슨의 화려한 복귀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23일(현지시간) 당원 우편투표 결과를 공개해 존슨의 승리를 알렸다.
기자로 활동하며 영국 보수층의 이목을 사로잡은 존슨은 영국 남부 헨리 지역에서 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금발 더벅머리에 펑퍼짐한 양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던 존슨은 유권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2008년 수도 런던의 시장에 당선됐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테리사 메이 총리에 의해 외무장관에 발탁됐지만, 브렉시트 추진 방향을 둘러싼 갈등으로 2018년 사퇴해 다시 보수당 평의원으로 돌아갔다.
◇英명문가 출신 존슨, 기자가 되다
존슨은 최근 영국 일간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굉장히 어둡고, 상당히 찌질한, 엄청난 괴짜였다. 그 시절 내가 좋아한 것은 대영 박물관에 가기 위해 런던을 가로질러 가는 일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암울한 회고와는 달리 그는 영국의 손꼽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존슨의 부모는 1964년 뉴욕 맨해튼에서 그를 낳았다.
존슨의 어머니인 샬럿 포셋은 진보 지식인 집안의 자녀로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샬럿 포셋의 아버지, 즉 존슨의 외조부는 유럽인권위원회 의장을 지낸 변호사 제임스 포셋이다.
그의 아버지 스탠리 존슨은 유럽위원회(EC) 의원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간부를 지냈다. 전형적인 친(親)EU파로 2016년 브렉시트 반대에 앞장 서기도 했다. 존슨의 증조부는 터키 오스만제국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터키계 언론인 알리 케말이다. 그는 1920년대 영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5살 때 영국으로 건너왔다. 어린 시절 난청이 심해 귀에 인공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여러차례 받기도 했다. 3남 1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친구가 별로 없는 조용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 보리스 존슨(왼쪽) 총리의 유년기 모습. 3남 1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친구가 별로 없는 조용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더타임스 캡처)
존슨과 형제들은 1975년 영국 사립 기숙학교인 애시다운하우스에 진학했다. 존슨의 부모는 그 직후인 1978년 이혼했다. 이후 존슨은 이튼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해 고전학을 공부하는 엘리트로 성장했다.
옥스퍼드에서 그는 시사 풍자 잡지 '트리뷰터리(Tributary)'의 편집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옥스퍼드 연합 총학생회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87년 졸업 후 그는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4세기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궁전에 대한 고고학 관련 기사에서 존슨은 거짓 인용을 덧붙인 것으로 드러나 해고됐다.
그러나 옥스퍼드대 총장의 소개로 이후 데일리텔레그래프에 입사, 다시 기자로 활약하게 됐다. 영국 보수층은 그의 기사에 담긴 독특한 문체와 화려한 고어의 활용에 환호했다.
특히 1989년부터 1994년 벨기에 브뤼셀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그는 "EU가 콘돔 사이즈를 16㎝로 통일하려 한다" "EU가 새우향 감자칩 생산을 금지한다"등 자극적인 기사로 영국의 숨어있던 반EU 그룹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 존슨, 반EU 세력 이끄는 정치인으로
브뤼셀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존슨은 본격적인 정치인의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1994년 정계 인사를 만나 유럽의회 선거 출마를 타진하면서다. 그러나 경력이 없던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전략을 바꾼 그는 영국 하원을 공략, 1997년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노동당 현직 의원에 패배했다. 그는 2001년 총선에서는 당선되며 중앙 정치에 발을 들였다.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우파 언론 스펙테이터 편집장으로 일하며 대중과 꾸준히 소통했다. TV 오락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자조해 인기를 모았다. 더벅머리에 후줄근한 양복은 상류층인 존슨의 이미지를 시민과 가깝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는 2008년 런던 시장에 당선됐다.
【런던=AP/뉴시스】 2012년 보리스 존슨(왼쪽) 당시 런던 시장이 자전거에 올라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내며 세계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존슨은 런던 시장으로 재임하며 생활 임금을 지지하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사면을 승인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다수 펼쳤다. 동성애자 퍼레이드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극우'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집중했다.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내며 세계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런던 시장 임기가 끝난 후 평의원으로 돌아온 존슨이 다시 대중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브렉시트 바람이 불면서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되며 존슨은 '강경 브렉시트'의 대표 정치인이 됐다.
◇ 메이의 실책, 존슨의 기회가 되다
지난 해 12월부터 시작했던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 투표가 세 차례나 실패하자 보수당원들은 강력한 리더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차기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32%의 지지를 받던 그는 다음 달인 5월께 40%의 지지율, 본격적인 보수당 경선이 시작된 6월에는 5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 후보로 등극했다.
【카디프(웨일스)=AP/뉴시스】지난 6일 웨일스 카디스에서 열린 보수당 대표 선거 운동을 마친 보리스 존슨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그의 대세는 정치 자금으로도 확인된다.
17일 영국 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존슨은 지난 1년 동안 약 70만2000파운드(10억3000만원)의 정치 지원금을 모금하며 정치인으로 역대 가장 많은 모금 기록을 달성했다.
5월 보수당 경선이 시작된 후 존슨에 모인 자금은 54만8000파운드(약 8억600만원), 최근 2주 동안의 모금액만 해도 20만파운드(약 2억9000만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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