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 꿈꾸다 최연소 주교…정진석, 국내 두번째 추기경
[서울=뉴시스] 정진석 추기경. 2021.04.27. (사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email protected]
정 추기경의 꿈은 원래 발명가였다. 세상에 이로운 물건을 만들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1950년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전쟁의 그의 인생을 바꿨다. 6·25 동란에서 생명이 파괴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아 사제의 길을 걷기로 했다.
1954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들어가 공부에 전념했다. 1961년 명동대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약현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소신학교 교사, 서울대교구 법원 서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등을 지냈다.
[서울=뉴시스]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열린 정진석 추기경 서임 축하연. 2021.04.27. (사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email protected]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제2대 청주교구장에 임명됐다. 만 38세 6개월, 당시 최연소 주교였다. 28년간 청주교구의 자립과 사목체계 확립을 위해 헌신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 교구장, 평양 교구 교구장 서리에 임명됐다.
[서울=뉴시스] 정진석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2021.04.27. (사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email protected]
평소 말수는 적었으나 사회적 현안과 관련 교단의 견해를 충실하게 대변해 왔다. 특히 생명 분명한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배아도 인간 생명"이라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지난 2005년 서울대교구 안에 '생명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하는 등, 생명운동과 선교에도 힘썼다.
[서울=뉴시스] 정진석 추기경, 허영엽 신부. 2021.04.27. (사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email protected]
그리고 사제가 된 지 60년 만에 하느님 품에 안겼다. 떠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내줬다. 평소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 추기경답게, 생전에 한마음한몸동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선종 후 각막기증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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