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부터 칸까지…변희봉은 봉준호의 페르소나
봉준호 감독 영화 7편 중 4편 출연 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나오기 시작
봉준호 감독 초1 때 변희봉 연기에 반해
살인의 추억·괴물·옥자 등서 명연기 펼쳐
'옥자'로 칸…"70도 기운 고목나무에 꽃"
[서울=뉴시스] 영화 '살인의 추억' 속 변희봉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8일 세상을 떠난 배우 변희봉(81·변인철)은 거장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였다. 그는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봉 감독 영화 7편 중 4편에 출연했다. 배우 송강호 역시 봉 감독 영화 4편에 나왔는데, 변희봉은 송강호와 함께 봉 감독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에서 호흡을 맞췄고, '괴물'에선 부자 연기를 하기도 했다.
송강호가 봉 감독 영화에서 주연이었다면, 변희봉은 비중 있는 조연을 도맡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변희봉은 영화 주 무대가 되는 아파트 경비원 '변 경비' 역을 맡았다. 동네에서 개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는 이 작품에서 변 경비는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 먹는 다소 섬뜩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으나 이 영화 특유의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변희봉이 '플란다스의 개' 출연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탐탁치 않아 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역할이 경비원인데다가 개를 잡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그게 영화감이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봉 감독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변희봉이 나온 TV 사극을 보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 존경해왔는지 말하며 변희봉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봉 감독과 변희봉의 인연이 시작됐다.
변희봉은 봉 감독의 걸작 중 하나인 '살인의 추억'에도 나왔다. 박두만(송강호)·조용구(김뢰하) 수사팀 반장 '구희봉' 역이었다. 구희봉은 두만과 용구가 수사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인물이었다. 특히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 중 하나인 논두렁 롱테이크 신(scene)에서 논으로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자연스러운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줘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변희봉을 향한 봉 감독의 애정은 변희봉의 이름을 배역 이름에 넣는 것으로도 잘 나타났다. 변희봉은 '플란다스의 개'에선 변 경비, '살인의 추억'에선 구희봉이었고, '괴물'과 '옥자'(2017)에서도 캐릭터 이름이 '희봉'이었다. 봉 감독은 변희봉은 "광맥"으로 표현한 적도 있다. "캐도 캐도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궁금한 배우"라며 "계속해서 (변희봉에게서) 뭔가를 더 캐내고 싶다"고 말했다.
봉 감독의 첫 번째 1000만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은 그가 출연한 봉 감독 영화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아 빼어난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아들 강두(송강호)와 한강 앞 편의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희봉을 연기한 그는 손녀를 구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괴물과 맞서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달려오는 괴물을 마주하자 아들 강두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치던 변희봉의 표정은 당시 평단으로부터 "변희봉만이 보여줄 수 있는 페이소스"라는 극찬을 받았다. 또 강두와 오징어다리 갯수를 두고 대화하는 영화 초반 장면은 "변희봉만이 할 수 있는 생활 연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변희봉은 '옥자'에선 주인공 미자(안서현)의 할아버지 희봉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변희봉은 70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연기 인생 정점에 섰다. 이후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봉 감독과 함께 출연해 칸영화제에 갔던 일을 언급하며 "길이 길이 내 기억에 남을 일이다"며 "눈 감을 때까지 이 기운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봉 감독은 "앞으로 자주 가시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변희봉이 당시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70도로 기운 고목 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말한 것도 큰 화제가 됐다.
변희봉이 봉 감독의 또 다른 걸작 '마더'(2009)에 출연하고 싶어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봉 감독이 '마더'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변희봉은 봉 감독에게 배우 김혜자가 연기한 '엄마' 역을 두고 "서방은 없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평소 변희봉은 김혜자와 함께 연기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변희봉은 "난 평생 홀애비 역할만 했고, (김혜자와는) 신분이 달라서 함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변희봉을 '기생충'(2019)에 캐스팅하려 했다는 얘기도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당시 변희봉 건강이 악화하면서 출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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