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하려면 임신하지 말라고…명백한 차별 아닌가요?"[직장인 완생]
상사가 "당분간 임신하지 마"…인사 불이익 암시
남녀고용평등법상 임신·출산 이유로 불이익 안 돼
중노위, 지난해 육아휴직 후 강등 사례에 시정명령
정부, 육아휴직 활성화 위해 대체인력 지원 강화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 직장인 A(31)씨는 최근 인사팀으로부터 대리 승진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입사 후 야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한 성과를 드디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팀 회식을 하다 들은 얘기에 A씨는 귀를 의심했다. 바로 '승진하려면 임신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같은 팀에 있는 두 아이의 아빠 B대리가 승진을 위해 둘째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팀장도 이에 동조하면서 A씨를 향해 "당분간 임신할 생각은 하지말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A씨가 임신 7주차인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임신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쓰려면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하지만, 어쩐지 시선이 곱지 않을까 봐 당분간 이를 말하지 않으려던 A씨는 간담이 서늘했다. A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며 "임신이 곧 인사고과 불이익이라는 얘긴데, 명백한 차별"이라고 토로했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정부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부처를 신설하고 총력 대응을 하기로 했다.
다만 정작 현장에서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여전히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고, 이를 넘어 실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이 지난 2월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근로자의 27.1%가 혼인·임신·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직무 배치나 승진에 있어서 성차별을 경험했다는 여성도 35.5%에 달했다. 남성의 경우 각각 19.0%, 19.7%였다.
A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A씨의 회사처럼 임신을 인사평가의 감점 요소로 보는 게 정당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정당하지 않다.
지난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측은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이는 임신뿐 아니라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사용자는 이를 거부할 수 없고,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육아휴직 중 해고도 불가능하다.
이 '불리한 처우'에는 승진 누락 또는 강등도 포함된다.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육아휴직 사용 후 복직한 직원의 직급을 강등하고, 승진에서 차별한 업체에 대해 첫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파트장이었던 근로자 C씨는 출산을 앞두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사측은 C씨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점과 해당 부서의 업무량 감소 및 적자 등을 이유로 부서를 통폐합하고 C씨를 파트장 직책에서 해제했다.
여기에 1년의 육아휴직 후 복귀한 C씨를 일반 직원으로 강등시키기도 했다.
초심인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녀의 승진 소요 기간을 비교할 때 강등이 성차별이 아니라고 봤지만, 중노위는 육아휴직 사용률이 남성보다 여성이 현저히 높은 점을 들어 초심 판정을 뒤집었다.
중노위는 C씨에게 승진 기회를 주고, 승진 대상으로 평가된다면 차별을 받은 기간 동안 임금 차액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 차별적 내용의 취업규칙과 승진규정을 개선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다시 A씨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만일 A씨가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회사가 A씨를 대리 승진에서 누락한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에 해당할 것이다.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노동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해 C씨의 사례처럼 판정을 받아볼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임신·육아휴직에 대한 눈치를 덜 볼 수 있도록 회사가 대체인력을 뽑으면 지원하는 대체인력지원금을 월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파견근로자를 사용해도 지급받을 수 있다.
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업무를 분담한 동료 근로자들에게는 월 최대 20만원의 분담지원금이 제공되는 등 현장에서 출산·육아기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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