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지키려 사퇴' 구로구청장 논란…기업인 출신 他구청장 2인은 현재?
문헌일 구청장 충격 사퇴…박강수 구청장 1심 패소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보유 주식 매각해 대조 이뤄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지난 4월30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린 '성공회대학교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4.04.30. [email protected]
문헌일 전 서울 구로구청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지키겠다며 지난 15일 구청장직에서 사퇴해버려 구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문 전 구청장은 1990년 설립된 정보통신설계, 감리, IT컨설팅 등을 영위하는 업체인 문엔지니어링의 창립자다. 미국 벡텔사의 국내 합작회사인 대한엔지니어링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40년 이상 구로구에서 일하며 창업까지 한 인물이다.
2013년 새누리당 구로구 을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직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후보로 공천됐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국민의힘이 구로구청장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뺏은 것은 2010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문 전 구청장은 지난해 3월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서 문엔지니어링 주식이 구청장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결정 처분을 받았다. 문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패소하자 결국 사퇴를 택했다.
구로구민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문 전 구청장이 연 퇴임식에 소속 공무원들이 모여 환송을 한 것도 구민 입장에서는 달가울 수 없었다.
구민 이모씨는 지난 16일 민원 글에서 "이임식 후 몇몇 담당자와 인사 후 헤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창 바쁜 민원 상대 시간에 공무원들 줄 세우고 악수 행렬을 이루게 한 담당자 문책을 요구한다"며 "구민들에게 사과하고 고개도 못 들고 내려가야 하는 판에 직원들 동원해서 퇴임식 열어주는 것은 구민들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라고 항의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2일 서울 마포나루스페이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03. [email protected]
문 전 구청장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기업인 출신 구청장이 박강수 마포구청장이다.
박 구청장은 1988년 한국서비스신문사를 창간한 언론인 출신이다. 이후 그는 시사포커스, 월간 시사신문, 월간 멋과 지혜, 월간 르네시떼, 주간뉴스, 시사신문, 일간시사신문 등을 다수 매체를 만든 인물이다.
2022년 마포구청장 당선 당시 박 구청장 본인과 배우자, 자녀는 땡큐미디어그룹 주식 6만주, 일간시사신문 주식 2만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땡큐미디어그룹은 땡큐뉴스, 일간시사신문은 시사포커스를 발행하는 회사다. 박 구청장 일가가 보유한 두 언론사 주식 평가액은 34억원이다.
문 전 구청장처럼 박 구청장도 지난해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로부터 배우자, 자녀(장남·장녀)가 보유한 언론사 주식이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주식백지신탁심사위는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라고 통보했지만 박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지난 1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8월 1심에서 패소했다.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로부터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판단을 들은 박 구청장은 지난해 본인이 보유한 땡큐미디어그룹 주식 2만주를 장남과 장녀에게 1만주씩 양도했다. 이로써 박 구청장 본인이 보유한 주식은 사라졌다. 그는 마포구에 있던 언론사 본점도 서대문구로 옮기며 소송에 대비했지만 1심 패소를 피하지 못했다.
박 구청장은 행정소송에서 마포구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점, 언론 활동이 지자체장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점 등을 주장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구청장 직무가 언론사 관련 정보를 입수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무라며 인사혁신처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는 패했지만 박 구청장은 본인 주식을 모두 처분한 만큼 2심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보고 지난달 서울고법에 항소한 상황이다.
다만 박 구청장이 문 전 구청장처럼 구청장직을 내려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박 구청장은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온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시스]조성명 강남구청장. 2024.05.12. (사진=강남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 전 구청장이나 박 구청장과는 달리 인사혁신처 공문을 받은 직후 주식 매각 절차를 밟은 조성명 강남구청장의 행보는 대조를 이룬다.
조 구청장은 자수성가한 유통 사업가 출신이다. 30대였던 1990년대 초 서울 도곡시장에서 대농그린마트를 운영해 성공을 거뒀다.
그는 대형마트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전국 농축산물 산지를 연결하며 물류망을 구축했고 주변보다 낮은 가격으로 다양한 식자재를 공급하며 큰돈을 벌었다.
2002년 무소속으로 강남구의회 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그는 20년 만인 2022년 강남구청장에 당선됐다. 당선과 동시에 조 구청장은 재산 527억원을 신고하며 지방선거 당선자 중 재산 1위에 올라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도곡동 아파트와 경기 고양시 오피스텔 38채, 인천 강화군과 충남 당진시 등에 있는 토지 등을 보유한 조 구청장은 대농파트너즈 3만주, 대농그린 2500주 등 대농마트 관련 주식을 신고했다. 증권 보유액은 26억4271억원이었다.
조 구청장도 백지신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인사혁신처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을 백지신탁하겠느냐는 공문을 발송하자 조 구청장은 이를 받아들여 바로 백지신탁과 매각 절차를 밟았다.
조 구청장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대농마트 관련 주식을 처분했다. 이로써 조 구청장 본인이 보유한 주식은 없어졌고 일가가 보유한 주식 역시 26억여원에서 약 3800만원으로 줄었다.
미련 없이 주식을 처분했지만 조 구청장 일가의 재산은 여전히 489억여원 수준으로 한국 공직자 중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백지 신탁에 저항하는 공직자와 순응하는 공직자가 공존하면서 제도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 주식 백지신탁 제도가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인사혁신처는 이를 근거로 백지신탁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주식을 보유한 공직자들의 이행 의무를 점차 강화해 왔지만 헌재 결정 당시 드러난 쟁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시 헌재는 재산권 침해, 수단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다른 대안의 실효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따진 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백지 신탁 제도가 합헌이라 판단했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다.
위헌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헌법재판관 4명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를 위해서는 형사처벌, 부당이득환수, 직무회피, 주식의 단순보관신탁 등의 대체수단을 강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보유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최소침해성 원칙에 반해 국회의원의 재산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백지 신탁 관련 조항을 개정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서울 자치구청장 3인방의 엇갈린 행보가 공직자윤리법과 백지 신탁 제도에 관한 찬반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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